2017/03/20 25

[최병렬]안양 만안구 대농단지의 변천사

안양 만안구 대농단지의 변천사 안양 박달1동과 안양3동에는 대농단지라 불리우는 대규모 주택가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일제 강점기인 1932년 일본인들에 의해 과 인견(人絹)을 생산하는 조선직물주식회사와 조선견직이 들어섰던 대규모 공장이었지요. 1938년에는 조선총독부의 지시로 화신백화점 총수였던 박흥식이 해방을 앞둔 1944년 8월19일 자본금 5천만원(당시화폐)으로 부지 3만평에 건평 1만평 규모의 초대형 조선비행기주식회사를 설립합니다. [오마이뉴스 기사] 반민특위에 제1호로 검거된 '매판자본가' [특별기획-미리보는 친일인명사전 9] 전 화신백화점 사장 박흥식 반민특위에 제1호로 검거된 '매판자본가' [특별기획-미리보는 친일인명사전 9] 전 화신백화점 사장 박흥식 www.ohmynews.com h..

[정진원]안양의 옛 마을 지명 이야기

[정진원]안양의 옛 마을 지명 이야기 우리나라 지명, 특별히 마을이름의 역사에서 볼 때 1914년은 마을이름의 ‘창촌개명(創村改名)’의 해였다. 일제에 의한 이른바 ‘창씨개명(創氏改名)’이 우리네 선조들을 모욕한 것이라면, 창촌개명은 우리네 땅을 더럽힌 하나의 큰 사건이었다. 일제는 당시 7만여 개 정도의 우리나라 마을(구동리)을 2만여 개 정도의 신동리로 통폐합하였다. 세 개 정도의 마을을 합쳐서 하나의 신동리를 만들고, 거기에 어김없이 한자 이름을 붙였다. 그때 순수소박한 우리말 마을이름이 잡종생경한 한자 동리 이름으로 바뀌었다. □수푸르지 [숲골>숲울>수푸르지, 임곡(林谷)] 지금 안양역 동쪽 지역 안양1동 주민센터를 중심으로 한 아파트 자리에 일찍이 정기시장이 형성되었다. 안양에서는 유일한 시장이..

[정진원]의왕의 옛 마을 지명 이야기

[정진원]의왕의 옛 마을 지명 이야기 우리나라 지명, 특별히 마을이름의 역사에서 볼 때 1914년은 마을이름의 ‘창촌개명(創村改名)’의 해였다. 일제에 의한 이른바 ‘창씨개명(創氏改名)’이 우리네 선조들을 모욕한 것이라면, 창촌개명은 우리네 땅을 더럽힌 하나의 큰 사건이었다. 일제는 당시 7만여 개 정도의 우리나라 마을(구동리)을 2만여 개 정도의 신동리로 통폐합하였다. 세 개 정도의 마을을 합쳐서 하나의 신동리를 만들고, 거기에 어김없이 한자 이름을 붙였다. 그때 순수소박한 우리말 마을이름이 잡종생경한 한자 동리 이름으로 바뀌었다. *사그내 [사근천(沙斤川), 사천, 모래내] 지금 의왕시 고천동이 그때 이름 붙여진 신동리이다. 그 신동리 안에 가장 큰 마을이 ‘사그내’였다. 지금 고천초등학교, 전 의왕..

[정진원]과천의 옛 마을 지명 이야기

[정진원]과천의 옛 마을 지명 이야기 우리나라 지명, 특별히 마을이름의 역사에서 볼 때 1914년은 마을이름의 ‘창촌개명(創村改名)’의 해였다. 일제에 의한 이른바 ‘창씨개명(創氏改名)’이 우리네 선조들을 모욕한 것이라면, 창촌개명은 우리네 땅을 더럽힌 하나의 큰 사건이었다. 일제는 당시 7만여 개 정도의 우리나라 마을(구동리)을 2만여 개 정도의 신동리로 통폐합하였다. 세 개 정도의 마을을 합쳐서 하나의 신동리를 만들고, 거기에 어김없이 한자 이름을 붙였다. 그때 순수소박한 우리말 마을이름이 잡종생경한 한자 동리 이름으로 바뀌었다. □제비울 [참새울, 까치울, 노루울, 가래울, 가재울] 제비, 참새, 까치가 많은 마을이라서 제비울, 참새울, 까치울이 되었을 것이다. 제비는 착한 마음씨의 사람을 좋아해서..

[기억-최태술]안양과 設農湯(설농탕)

안양과 설렁탕 안양에는 유명한 설렁탕집이 있었다. 이름하여 경민식당이다. 70~80세 정도의 어르신 좀더 내려온다면 60대의 안양토박이들은 거의 안다. 안양역 구 도로변에 있는 식당에서 가마솥을 걸고 24시간 끓여 진하고 뒷맛까지 깔끔한 그 맛을 잊지 못하는 분들이 지금도 경민식당 설렁탕 이야기를 한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그 유래는 이러하다. 안양 동안구 평촌에는 귀인동이 있다. 이 동 이름이 글자 그대로 귀인(貴人)들이 살던 곳이어서 귀인동이다. 이곳에 살던 귀인이란 宮中에서 宮人으로 생활하다 퇴역하신 분들이다. 또 지금의 수촌 뒤 내씨들이 살았다. 두 곳 다 퇴역한 궁인들이 생활하면서 궁중에서 하던 설렁탕을 끓여 당시 한양으로 오가는 길손에게 팔기 시작한 것이 안양 설렁탕이 유명해진 발단이라 한다. ..

[조성현]고려최영(崔瑩)장군과 ‘안양사칠층전탑’

고려최영(崔瑩)장군과 ‘안양사칠층전탑’ 기록 속 태조왕건이 세우고 고려말 최영장군이 ‘안양사칠층전탑’을 보수했다고 등장하는 고려안양사. 좌측상단 사진은 전탑지의 전탑이 주저앉아 무너져 폐기된 전과 기와편들의 양상으로 전탑을 장식했던 것으로 보이는 고려백자 연봉(연꽃봉우리 장식, 우측상단 사진) 등 다량의 매장문화재가 노출되어 고려 안양사의 실존을 증거하고 있다. 고려안양사에는 삼층석탑과 전탑이 사찰의 중심공간인 금당지 앞에 나란히 자리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고려안양사의 석탑과 전탑지는 김중업박물관(구,유유부지, 문화누리관인근)에서 만나볼 수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옛시문 속에서 고려 명종때 문신 김극기(金克己, 1150~1204)는 고려안양사를 방문하고 “걸어서 아름다운 다리를 지나 감색으로 붉게 ..

[조성현]고려시대 안양사지(安養寺址)출토 용도미상의 철제동물장식(鐵馬)에 대한 고찰

고려시대 안양사지(安養寺址)출토 용도미상의 철제동물장식(鐵馬)에 대한 고찰 안양시문화해설사 조성현 □들어가는 말 2014년 갑오년(甲午年) 말(馬)의 해를 맞아 안양시 석수동 안양예술공원 초입 고려안양사지(구,유유부지/ 현,‘김중업박물관’복합문화단지)발굴 및 출토된 용도미상의 철제동물장식인 ‘철마(鐵馬, 철제말장식)’를 타도시의 사례를 고찰하여 그 성격과 (추정)용도를 규명하고자 한다. 철마는 말의 형태를 본 따 용해된 철을 부어 주조한 것을 말한다. 타 지역의 출토 고려시대 철마의 사례분석결과 철마는 신령스런 기운을 가진 신마(神馬)로서 호랑이 출연이 잦은 지역에서 호랑이로부터 화를 당하는 것(虎患)을 회피하는 등 교통의 안전을 확보하는 기능과 함께 민간신앙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철마는 철제로 만든 ..

[의왕]100년 역사의 흔적이 있는 하우현성당

100년 역사의 흔적이 있는 하우현성당 하우현(下牛峴)성당은 본당 설립 100년이 넘는 역사에 안양지역 천주교 전파의 첫 머리를 차지하는 의미 있는 곳이다. 신도수 200여명에 성당 규모는 전국 본당 성당 중 가장 작은 성당이지만 이 곳은 한국천주교뿐 아니라 근대역사의 흔적뿐 아니라 한국과 프랑스 건축양식을 절충한 한옥 사제관을 통해 근대사적 건축양식까지 만날 수 있는 역사 깊은 성당이다. 현 의왕시 청계동, 과거 시흥군 의왕읍 청계리(始興郡 儀旺邑 淸溪里) 속칭 ‘하우고개’ 자락과 청계산과 광교산맥을 잇는 골짜기에 자리하고 있는 하우현은 서울에서 약 24㎞ 떨어져 있고 안양시와는 20리 거리로 근접해 있으며 조선시대 동양원이라는 역원(驛院)이 있던 곳으로 현재 원터라고도 불리운다. 역원이란 과거 중앙관..

[의왕]청계사 '조정숙공사당기비' 알아본다

청계사 '조정숙공사당기비' 알아본다 고려 충렬왕의 문신으로 청계사 중창주인 정숙공(貞肅公) 조인규(1237-1308)와 청계사와의 관련을 기록한 청계사 조정숙공사당기비(종중 신청/ 청계사 동의)가 경기도 문화재 자료로 지정됐다. 경기도는 2014년 5월 9일 1899년 봉은사(서울)로 옮겨졌다가 100여년이 지난 2013년 5월 원래 자리인 장경사로 돌아온 남한산성 장경사 동종 등 13점을 ‘경기도 문화재’로 지정했다. 경기도는 경기도문화재위원회 유형분과에서 장경사 동종(강희 21년명 장경사 동종), 의왕 청계사 사적기비, 남양주 흥국사 영산전 등 13점을 경기도 지정문화재로 의결하고, 수원시 화성박물관 소장 홍재전서 등 7점을 예비 지정했다고 밝혔다. 경기도가 이번에 지정한 도 문화재는 ▲강희 21년명..

[최병렬]안양 수푸루지 마을과 옛 다운타운 이야기

안양 수푸루지 마을과 옛 다운타운 이야기 ● 안양 수푸루지 마을의 이야기 임곡마을은 안양8경중 제1경인 '망해암 일몰'을 볼 수 있는 비봉산이 품고 있는 곳이다. 대다수(임곡 1.2지구) 지역이 주거환경개선으로 아파트가 들어섰지만, 임곡3지구에는 아직 사람이 한명 지나갈 정도로 아주 좁은 골목길과 기와집, 철지붕집, 판잣집, 양옥집, 다세대, 다가구 등 마치 건축물의 변천사를 한 공간에서 볼 수 있다. '수푸루지'(林谷洞)는 마을은 깊은 골짜기에 나무와 숲으로 둘러싸인 고을이라 하여 칭하였다고 한다. 또 마을 앞으로 큰 하천(안양천, 임곡천)이 흐른다 하여 ‘수풀내(林川)’라 부르기도 하였다. 예전에는 수푸루지 내에서도 동쪽지역을‘건너말’, 서쪽지역을 ‘아랫말’, 북쪽지역을 ‘웃말’이라 칭했다. 또 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