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16]안양장(安養場)-시대동(市垈洞)-구시장(舊市場) 기록

안양장(安養場)은 1872년 조선시대 지방지도 <과천현>편에 표기될 정도로 역사가 오래된 장으로 1926년 1월28일 상설시장이 개시됐다. 1929년에 안양지방에서는 최초로 전깃불이 들어왔으며 1998년 재개발되기까지 지명은 시대동(市垈洞) 일명 구시장(舊市場)이라 불리웠다.
1872년 과천현에서 직접 그려 올린 [과천지도]를 보면 [해동지도]에는 표시되지 않았던 안양장(安養場)과 군포장(軍浦場)이 표시되어 있다. 당시 군포장은 과천현 관내이며 안양장은 금천현 관내였다. 그런데 그 표시 방법이 특이하다. 두 개의 장을 만안교에서 왼쪽 아래(남쪽)의 삼남대로와 연결된 도로가 관통하고 있는 모습으로 그린 것이다.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1827)에서도 군포장과 안양장이 있었음이 확인된다
5일장이던 안양장에 상설시장이 개시( 開市) 된것은 1926년 1월 28일이었다. 거래되는 품목은 농산물을 위시하여 축산물, 포목, 일용잡화까지 다양했다. 개시(開市)한 1년후(1927)의 년간 매출액을 보면 농산물이 15만 6천원, 잡화가 21만 2천원, 그밖에 직물, 축산물, 수산물 등 모두 50여 만원에 달했다.
상인들은 개시 1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1927년 6 월 4일 단오절을 기해 대대적으로 기념식을 거행키로 했는데, <동아일보> 1927년 6월 1일자에 안양시장 일주기념(安養市場 一週紀念)이란 제하에 다음과 같이 보도하였다.
"경기도 시흥군 서이면 안양은 군의 중앙일뿐 아니라, 교통이 편리하고 따라서 산물도 상당함으로 동면에서는 작년중에 안양시장을 설치한 후 유래 성적이 비상히 양호하던 바 더우기 안양번영의 일책으로 오는 6월 4일(단오일)을 기하여 전시장(全市場) 일주년 기념식을 성대히 거행하리라 하며 여흥으로 예기의 가무와 오산청년(烏山靑年)의 소인극(素人劇) 외 안양소년척후대 주최의 축구대회 및 동화동요회 등이 있어서 많은 흥미가 있으리라더라"
1주년 기념식은 예정대로 동년 6월 4일 오후 2시부터 안양시장 내 광장에서 수천의 관객이 참석한 가운대 전대(田代) 발기인 대표의 식사와 조한구 서이면장의 경과보고, 신미(神尾) 시흥군수의 고사, 종문웅(안양금융조합 이사), 조희철(동아일보 시흥지국 기자), 엄기승(안양공보교 기성회장)의 축사에 이어 기녀들의 기무, 소인극등을 공연해 일대 성황을 이루었다.
안양시장측에서는 이후로도 씨름대회.그네대회 등을 개최하여 시장의 번영을 도모하였는데,일례로 1933년 8월 25일, 8월30일, 9월 4일 등 장날을 기해 안양역 광장에서 안양씨름대회를 개최했고, 같은해 음력 7월 30일 장날부터 추석날까지 매 장날마다 씨름대회를 개최해 1등에 황소1두, 2등에 광목 1필이 상품으로 수여되었다.
그러나 이곳이 저지대로 홍수가 나면 안양천의 범람으로 침수가 되기 일쑤였고, 더우기 1961년 11월 6일 안양4동으로 시장이 이전하자 점차 쇠퇴하기 시작했다가, 옛 태평방직 자리에 대단위 아파트(진흥아파트)가 들어서자 동네시장으로 잠깐이나마 번성하다가 아파트지구로 개발되면서 사라졌다.
행정구역으로 시대동(市垈洞)에 속했던 안양장은 1929년에 안양지방에서는 최초로 전기가 송전(送電)된 곳이며 1961년 11월6일 안양4동에 중앙시장(새시장)이 생기면서 190년대 말 시장 기능이 없어지기까지 구시장(舊市場)이라 불리웠다
『안양시 지명유래』등 역사적 기록을 들여다보면 군포장(軍浦場)은 안양장(安養場) 보다도 역사가 더 깊다. 군포장(軍浦場)은 수원에서 지지대 고개를 넘어 안양을 거쳐 한양으로 가던 시흥로 역로(驛路)의 중간 지점인 현재의 안양천 (맑은내, 군포천) 군포교와 구군포교 중간 지역인 안양시 호계동 평촌두산위브(더프리임+리버뷰) 아파트 단지와 호계구사거리 주변으로 군포장이 사라진 이후에도 이곳을 구장터라 불렀다.
또 주변 도로는 구군포길로 불리우고, 옛 군포장이 위치하던 지역에는 ‘구장터1로’에서 ‘구장터3로’까지의 도로 명칭으로 지명한바 있어 이곳이 장터였음을 증명하고 있다. 5일마다 개설되던 군포장은 처음에 군포천장(軍浦川場)이라 불리웠다. 1770년 편찬된『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에 ‘군포천장(軍浦川場)’이라 표기되어 있는데 군포천 옆에 장이 섰기 때문으로 보인다.
군포장이 서는 날은 이웃 안양장과 더불어 수차례 바뀌어 왔다. 조선시기에는 개시일이 3․8일로 나와 있는데 1905년 군포장이 되면서 1․6일로, 1923년에는 5․10일로, 1926년에는 2․7일로 나타나는 등 주변장의 영향에 따라 변화를 거듭한 것으로 보인다.
■시대동 (市垈洞, 舊市場) <안양1동>중앙동 동쪽으로 한국제지와 진흥아파트 사이에 자리잡은 마을이다. 안양의 중심부인데다가 지리적으로 군포, 의왕, 과천, 광명, 수암, 군자등이 인접해 있어 시장으로서는 최적지였다.
출처: https://ngoanyang.or.kr/2134 [안양지역도시기록연구소:티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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