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지역얘기/담론

[문원식]안양시민의식

안양똑딱이 2016. 7. 1. 16:30
[문원식]안양시민의식

[2006/08/25]성결대학교 교수·안양학연구소 소장
과거 안양을 사랑했던 선배들이 향토애로 무장한 채 지역발전을 위해 단합된 힘을 발휘했던 세가지 사건을 통해 오늘날 진정한 안양시민의식의 뿌리를 찾아볼 수 있다.

그 첫번째 사건은 1936년 시흥군청이전기성회를 중심으로 활동한 시흥군청 유치운동이다. 당시 동아일보에는 기성회조직(36년 2월26일자), 군청이전 군민대회(3월6일자), 군민대회 상보(3월7일자), 기성회원 입경활동(3월20일자) 등을 상세히 보도하고 있는 바 군청유치로 지역발전을 이루고자 했던 선배들의 노고를 확인할 수 있다. 군청이전 유치운동은 10년 뒤인 1945년에야 결실을 맺어 시흥군청이 안양면 안양리로 이전해 왔고 그후 안양이 계속해서 지역 중심도시로 발전하는 커다란 계기가 됐다.

두번째 사건은 4·19 이후 안양에서 치러진 7·29선거 유세 중 안양역전에서 벌어진 족청과 족청의 횡포에 대항한 반 족청 학생 및 시민연합 사이에서 벌어진 대규모 시위를 예로 들 수 있다. 정덕환, 이홍래 씨가 주동이 되고 대동청년단 등 안양의 온건한 유지들이 지원한 이 시위 덕분에 자유당 이래 위세를 떨쳤던 족청이 몰락하고 안양의 문제는 안양의 관점에서 풀자는 안양시민의식의 씨앗이 발아하는 계기가 됐다고 당시의 주역들이 회고하고 있다.

세번째 사건은 1969년 11월의 폐탄처리장 유입반대운동을 들 수 있다. 조선일보 11월19일자 기사에는 ‘18일 오전 10시 안양읍민 약 3천명이 안양극장에서 폐탄처리장 설치 반대궐기대회를 열고 시흥군청사까지 가두데모, 긴급 출동한 30여명의 경찰에 의해 2시간 만에 해산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경기도 당국이 수원 파장동에 있는 폐탄처리장을 박달동 수리산 중턱에 이전 설치키로 한 소식을 접하자 관민이 함께 조직적 설치 반대운동을 벌여 폐탄처리장 이전을 무산시켰던 사건이다.

1959년부터 석수1동 안양예술공원 초입에 위치하면서 의약품을 생산해온 주식회사 유유가 충북 제천 지방산업단지로 생산시설을 이전하면서 공장부지에 대한 매입의사를 안양시에 타진해오자 4,953평(연건평 2,345평, 평가액 244억원)에 달하는 동 부지의 매입, 보존 및 활용방안이 지역사회의 이슈가 되고 있다.

특히 동 부지 내에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현대건축가 故 김중업 선생이 설계한 기념비적인 건축물인 본관 건물과 경비실 건물이 현존하고 있고 ▲부지 초입에 통일신라시대의 중초사지당간지주(보물 제4호)와 3층석탑(경기도 지방문화재)이 소재하는 점 ▲인근에 마애종과 안양사 등 불교문화유산이 잔존하고 있는 사실로 볼때 향후 매장문화재의 출토 가능성이 높은 지역으로 판단되는 점 ▲명소로 추지하고 있는 안양예술공원과 연계해 개발할 경우의 시너지 효과 등이 동 부지에 대한 시급한 매입결정을 요구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

안양시는 (주)유유가 제천으로 이전을 결정한 2004년 8월부터 범시민대책위원회를 발족해 기자회견, 시의원간담회, (주)유유 대표자 면담, 2차면담, 현장방문 등 활동을 계속해 왔다.

시 재정으로 부지를 기계적으로 매입하는 것도 대책일 수 있지만, 향후 수의과학검역원 등 대규모 공공기관의 계속적인 지방이전으로 재정압박이 가속화될 것으로 우려되는 바, 이 문제에 대한 시민들의 공감대 형성을 통한 자발적인 모금운동이 대책으로 논의되고 있다는 소식이고 보니 선배들의 안양사랑의 사례가 타산지석이 되리라 여겨 몇자 정리해 봤다.

2006-08-26 07:5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