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지역얘기/담론

[김대규]삼덕공원에 박두진 시비를

안양똑딱이 2016. 7. 17. 17:19
[김대규]삼덕공원에 박두진 시비를

[2008/11/07 안양시민신문]본지 회장·시인

 

삼덕공원에 박두진 시비를

삼덕공원 기반공사를 위해 설치됐던 가림막이 제거되고, 옮겨 심은 나무들이 눈에 들어오니, 벌써 마음은 공원길을 걷게 된다.

안양시가 근래 펼친 사업 가운데서 단연 돋보이는 것이 문화예술 부문이 아닐까 한다. 이들 대부분은 전임 신중대 시장의 재임시에 선포된 ‘아트 시티’ 만들기에 따른 일련의 사업들로서 도심 간판 교체, 공공예술 프로젝트, 만안구 디자인 사업, 예술공원 조성, 문화재단 설립 등이 그 예라 할 수 있다. 삼덕공원도 이에 속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어느 것 한 가지도 이의 제기없이 진행된 일이 없다. 삼덕공원이 특히 그러했다. 공원부지 제공자와의 인간적인 갈등, 지하 주차장 설치를 둘러싼 시민단체들과의 불협화음, 주변 환경과 연계된 각종 문화예술 설치물에 따른 지역 전문가들과의 이견 등이 ‘공원’이라는 시민 공익성을 무색케 할 정도로 난무했다. 시설물 설치와 이용에 대해서는 아직도 미진한 부분이 남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세상만사는 각론보다 총론이 언제나 우선 순위로 수용되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소견이다. 총론은 항상 ‘본질’을 지향하고, 각론은 그 본질 구현의 ‘방법론’이기 때문이다. 방법론은 언제나 수정이 가능한 것이다. 다만 한국의 현실에서 모든 대주민 사업은 관이 주체가 되기 때문에 그 최초의 발상이나 기획에서부터 ‘본질’과는 거리가 먼 경우가 적지 않게 마련이다.
전문성이 요구되는 일일수록 더 그러하다. 당초의 문화재단 설립안이 그 좋은 예다. 그럴 때는 외부로부터의 건설적인 제안을 속히 받아들여 일을 도모하는 것이 최상책이로되, 관의 속성이나 시정 책임자의 성향이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없지 않다.

어쨌거나 삼덕공원은 조성 중이고, 문화예술재단은 설립 추진 중이다. 그동안 나는 재단 설립에 대해서는 스스로가 지나치지 않았나 여겨지게 많은 제안의 글을 썼는데, 이번에는 삼덕공원에 ‘박두진 시비(詩碑)’를 건립하자는 제의를 하는 바이다.

그 까닭은 이러하다. 박두진시인은 1916년 안성 출생으로서, 1939년에 ‘문장(文章)’을 통해 등단한 후, 1942년에 안양으로 이사와 삼덕제지 서무과장으로 근무하면서, 1948년도에 안양중앙교회 장로에 장립되어 시작(詩作)과 종교생활을 함께 했다. 그리고 1950년 6·25 직전에 서울로 이사했다.

안양에 거주한 것은 비록 얼마 되지 않지만, 다음의 두 가지 점에서 그의 문학적 업적을 높이 평가할 수 있다.

첫째는 박두진시인이 정귀영 평론가와 주도하여 1947년에 ‘안양문학동인회’를 결성하고, 안양 최초의 동인지 ‘청포도’를 간행 했다는 점. 이는 ‘안양문학’ 60년의 효시라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둘째는 한국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청록집』(1946년)이 박두진시인의 안양 거주시에 간행됐다는 사실에 비추어, 많은 수록 작품들이 안양에서 집필된 것이라는 점이다.
이 두 가지 사실만 가지고서라도 그의 안양에서의 문학생활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인 바, 시인이 바로 ‘삼덕제지’에 근무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시비 건립의 의의는 적다 할 수 없을 것이다.

더구나 당초 전임 시장 재임시 ‘삼덕공원’ 조성사업 논의 때, 박두진시인의 시비 건립에 대한 긍정적인 검토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으나, 그 후의 추진 상황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어 공론화의 계기도 마련할 겸 해서 제안 형식을 빈 것이다.

전국에는 지자체마다 자천타천으로 향토 출신 시인의 시비가 무수히 많고, 사업성이 두드러진 시비공원도 있다. 이에 대한 공과(功過)는 논외로 하더라도 문화예술진흥에 있어 지역 연고의 문화예술인을 기리는 것이야말로 우선 순위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기왕에 ‘삼덕공원’이 조성되고 있는 와중이라서 제안이 늦은 감은 있지만, 공원 조성 이후일지라도 이에 대한 전향적인 검토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자연 다음으로 인간 영혼을 정화시켜 주는 것이 예술이다. 그런 뜻에서는 시심(詩心)은 인간 풍성의 ‘방부제’라 할 수 있겠다. 그 방부제를 위한 첫삽이 박두진시비 건립으로부터 새롭게 시작되기를 희구해 본다.

2008-11-08 01:34: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