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halov #안양 #기록 #기억 #역사 #옛사진 #닐미샬로프 / 고속도로가 없던 시절에는 이 도로를 통해 서울에서 부산 그리고 목포까지 갔던 1번국도의 1968년 6월의 안양 구간 풍경으로 당시 석수동 미군부대에 전령으로 근무했던 닐 미샬로프가 칼라슬라이드로 찍은 것입니다.
사진 윗쪽이 석수동과 안양교 방향, 아래쪽이 안양역 방향으로 우마차가 안양역으로 열심히 가고 있다. 당시 1번국도는 서울과 수원으로 통하는 유일한 길로 2차선에 아스팔트 포장길이었다. 해마다 개나리 필 무렵 수원에 모심으러 박대통령이 행차하는 날엔 도로변애 있던 안양초, 만안초, 삼성초교에 다니던 어린이들은 도로변에 늘어서 태극기를 흔들고 박수를 쳤다.
사진 뒷쪽은 석수동인데 멀리 보이는 다리가 당시 만안초등학교 앞으로 흐르던 수암천 다리(화단극장앞)이거나 안양천을 건너던 안양교가 아닐까 싶은데 제 기억으로는 수암천 다리가 아닐까 싶다.
현재 안양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도로는 사진의 만안로와 안양시내를 관통하는 중앙로, 경수산업도로 등 3곳이지만 1968년 당시에는 사진에서 보이는 2차선의 1번국도가 유일했다. 또 당시 화물 운송 수단으로는 마차가 많았는데 안양역에도 마차 정류장이 있었다.
1960년대에는 시내 대중교통 수단이 없을 때로 안안양역 로타리 근처에 말마차 쉼터가 있었다. 가치를 타고 외지에 다녀오면서 짐이 많을 때 또는 화물을 운성할때는 이곳 말마차 쉼터에 있던 마부들과 흥정한후 짐을 운반했다.
안양시내 대중교통과 관련 고 이용구옹이 쓴 글을 보면 다음과 같다.
“1920~30년대 우리 고향 안양에는 여객수송으로 보창운수라 하여 경수버스(서울~수원간)가 1일 2~3회 있을뿐 화물등 운반수송 수단은 손수레나 우마차 였다 그리고 벼를 운반 하기위해 두 삼창정미소와 삼광정미소에 영업용으로 각 1대씩 화물차(트럭)가 있었다(당시 도라꾸라 했음) 그런 와중에 뜻 하지않게 사고가 났다 그것은 삼광정미소 주인(이광순)이 자기집 차에 치어 사망을 한것이다 이것은 당대 안양의 일대 큰 사건 이었다 그래서 자동차를 무섭다 했고 모두들 자동차를 경계했다. 가령 도로를 걸어 가다가 자동차 오는 소리가 나면 길 옆으로 피신 했다가 자동차가 다 지나가면 다시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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