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02]시흥군 축구대회 제일회 우승기념(1960.10.27)

2026.09.02/ #아카이브 #옛사진 #안양 #축구 #since1960/ 시흥군 축구대회 제일회 우승 기념사진으로 안양시문인협회 장호수 사무국장이 故 김대규시인이 남긴 책과 기록들을 정리하던중 발견한 사료다.
김대규시인의 모습을 사진속에서 발견할수 있는데 앞줄 좌측에서 세번째 인물이다.
사진 하단에 단기 "4290년 10월27일 시흥군 축구대회 제일회 우승기념"으로 표기돼 있으나 제일회가 무엇인지는 확인되지 않으며 유니폼의 안양과 함께 쓰인 영문 B이니셜도 궁금한 사안이다.
한편 정확히 언제부터 였는지는 모르지만 안양은 축구로 유명한 도시가 되어 있었다.
안양 축구의 역사는 무려 194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전국대회에서 우승을 하는 등 저력을 과시할 만한 도시였다는 것은 주목할만한 사실이다.
이같은 사실은 당시에 선수로 직접 참가했던 안양축구계의 원로 이서구 옹이 증언한 것으로 “아산군 체육회가 주최하고 조선일보가 후원하는 전국 유명팀 초청경기에서 안양팀이 우승했다”는 것을 사진과 함께 공개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이서구 옹을 비롯한 많은 원로들의 증언에 의하면 어렸을 때부터 크고 작은 축구대회가 많았고 축구와 친숙한 환경에서 자랐던 것이 축구와 인연을 맺게된 이유였다고 한다.
1950~70년대에 선수로 활약했던 안양축구계의 원로들은 지금도 한 때는 안양이 축구의 최강이었다는 자부심을 잊지 않고 있다.
안양 토박이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원로 축구인으로 이서구, 이규영, 정봉수, 박노성, 이규신, 심재덕, 정동준, 박성학, 이규남, 이석노, 권일상, 한광석, 이무용, 한재석 등이 있다.
1960년대 안양읍내 항공사진을 보면 안양3동에 있던 금성방직(현 대농단지-댕리단길) 공장안에 천연 잔디가 깔린 축구장까지 보인다. 당시에는 국내에 잔디구장이라고는 전국에 3개 밖에 없었는데 이곳 금성방직 축구장에는 한국 국가대표팀이던 양지선수단을 비롯 공군사관학교 축구부, 실업팀 등이 와서 연습경기를 했다. 당시 만안초등학교와 안양중학교에 다니던 학생들이 시멘트블록 담장 중간 중간에 난 구멍으로 이회택 등 국가대표 선수의 볼 차는 모습을 보며 축구의 열정을 불태워 1970년에는 안양중학교와 안양공고 축구부가 탄생하기도 했다.
안양공고 축구부는 이후 각종 축구대회에서 30여 차례나 우승을 차지한다. 이 무렵 축구하면 안양을 떠올리던 부흥기였지요. 이름을 날린 선수로는 FC안양 감독을 역임했던 김종필씨를 비롯 정해원, 기덕서, 이영표, 조윤환 등 상당수가 안양공고 출신이거나 안양중학교 출신으로 이들은 안양이 축구명문 도시로 이름을 드높이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프로 축구 구단 유치에도 많은 힘이 됐다.
안양은 1973년에 시로 승격됐는데 같은 해 7월1일에 안양시축구협회가 창립한 것을 봐도 안양에서 축구가 차지하는 위치가 상당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안양시의 인구는 5만명에 불과했지만 축구 열기만은 전국 최고였다. 축구 도시 안양의 전통과 맥은 FC안양으로 이어지고 있다.
[20221112]1949년 안양 고려석면에 축구단이 있었다(2022. 11. 12.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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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1940년부터 시작된 안양지역 축구사(2017. 2. 3. 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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