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4

1969년, 안양유원지 공짜풀장 제1풀

#안양 #닐미샬로프(http://www.mishalov.net/) #기록#역사/ 안양풀-안양유원지-안양예술공원 역사.....흔적도 없이 사라진 안양예술공원 초입에 있던 풀장입니다. 지금으로부터 44년전인 1968년 안양 석수동 미군부대에서 근무했던 병사 닐미샬로프가 찍은 슬라이드 사진이지요. 안양예술공원 계곡은 풍부한 수량과 숲으로 1920년대 부터 여름철 피서지였으며 일제 강점기인 1933년 철도수입 증대와 안양리 개발을 위해 사진속의 공짜 안양풀을 개장한 이후에는 서울 시민들의 피서지로 각광을 받았답니다. 1960년대 유료수영장이 서너개 생기고는 1970년대 한 해 평균 100만 명이 몰릴 정도였지요. 실제로 관보를 보면 1966년 여름피서철인 8월 6일-28일까지 토요일.공휴일에 경부선 안양 풀 임..

1937년 안양풀장 최초의 기록 사진

#안양 #안양풀 #안양유원지/ 1937년 발행된 경기지방의 명승시적에 수록된 안양풀장의 모습이다. 안양예술공원(안양풀-안양유원지)에 대한 사진 기록으로는 현재까지 찾은 것중에서 가장 오래된 사진이 아닐까 싶다. 기록을 보면 안양풀은 일제강점기인 1932년 일본인 안양역장 혼다 사고로(本田貞五郞)가 철도수입 증대와 안양리 개발을 위하여 조 한구 서이면장과 야마다(山田) 시흥 군수 및 지역유지들을 설득하여 1,500원의 예산으로 계곡을 막아 2조의 천연수영장을 만들어 안양풀이라고 명명했다. 당시 풀장을 조성하면서 하천에 있는 거대한 초석(사진 좌측 뚝 수문 앞 바위)에 한자와 일본어를 섞어 '안양 풀 소화 7년 8월 준공(安養 プ-ル 昭和 七年 八月 竣工)'이라는 명문과 마쓰모도(松本)라는 공사책임자의 이름..

1960년대 안양9동 수암천의 풍경

1960년대 안양9동 새마을 동네 앞 개천(수암천)의 풍경입니다. 지금은 매마른 건천이지만 당시에는 4계절 내내 수리산 병목안계곡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이 흘렀지요. 특히 천변의 판짓집같은 집들은 1977년 대홍수로 모두 떠내려는 아픔도 겪었고요. 세월이 흘러 민둥산이었던 수리산은 숲으로 우거졌는데 수암천에서는 평소 물을 볼 수 없는 마른 건천이 됐으니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보고 싶은 수수께끼입니다. 사진에서는 빨래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정겨우면서도 살기 힘들었던 당시의 사회 모습이 안쓰러웁게 묻어납니다. 당시에는 남자아이들도 엄마를 도와 빨래를 하고, 연탄불도 갈아야 하는 등 집안일을 거들어야 했으니 요즈음 아이들은 무척이나 행복한 거지요. 이 사진은 안양시청 종합민원실 2층에 전시된 사진을 똑딱이로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