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혜석 3

[자료]안양에 잠시 머물렀던 우리나라 최초 여류 서양화가 나혜석

우리나라 최초의 여류 서양화가인 정월(晶月) 나혜석(1896~1948). 화가로서 뿐만 아니라 독립운동가, 여권운동가, 문필가 등으로 활동하며 불꽃처럼 살다간 비운의 선각자인 그가 죽기 직전의 말년을 안양 경성기독보육원 양로원에서 보낸 시실을 아는 이가 많지 않다. 안양에서의 삶을 찾아보기 전전에 우선 나혜석은 누구인가 알아본다. 나혜석은 1896년 경기 수원시 신풍동에서 5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부친 나기정은 대한제국 때 경기도 관찰부 재판주사, 시흥군수를 지냈으며 일제 때는 용인군수를 지냈다. 1913년 진명여자보통고등학교를 최우등으로 졸업한 후 둘째 오빠 나경석의 권유로 일본 동경여자미술전문학교 유화과에 입학, 화가로서의 공부를 시작했다. 1914년 일본 유학생 동인지 에 '이상적 부인'이라는 ..

1947년 나혜석이 머물렀던 안양 기독보육원 농막

#안양 #나혜석 #경성기독보육원 #안양기독보육원 #좋은집/ 여류화가 나혜석은 말년에 시흥군 안양읍에 있던 경성기독보육원에 머물렀다. 그녀가 안양에 살았던 흔적을 찾고 있는 안양출신의 원로건축사 최승원 선생님은 2015년 11월 안양시지속가능발전협의회에서 마련한 '원로에게 듣는다-안양지역근대건축' 편에서 대부분의 기록을 보면 나혜석이 말년에 행려병자 처럼 살다 죽었다고 되어있으나 그렇지는 않았던 것 같다고 분석했다. [최승원] 보육원이 있는 경기도시흥군 안양은 혜석의 부친이 2번군수를 지낸지역이라 부친의 영향이 남어있고, 나경석의 친구 이운형이 경성보육원에서 중요직을 하고 있었다. 보육원농장 주변에 만주에서 나경석이 경영하던 민청공사일원으로 만주에 농사지으러갔던 노인의 아들 김서방이 살고있어 혜석이 마음 ..

1960년대 안양기독보육원 주변 풍경

#옛사진 #기록 #기억 #안양/ 1960년대 말의 안양읍내 현 안양2동 지역의 풍경으로 사진 아래 숲이 있는 곳은 당시 안양기독보육원(현 좋은집)이며, 그 위로 안양천이 흐릅니다 . 안양천 중앙으로는 자그마한 다리 하나가 보이고 그위로는 서울 수원간 1번국도(석수동에서 안양역앞을 지나 구 안양경찰서로 연결)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1번 국도 위로 보이는 동네가 안양2동 주택들이고 그 위 왼쪽 뒤로 보이는 큰 건물이 금성방직(현 대농단지)입니다. 1번국도 오른쪽 윗쪽에는 3층짜리 자그마한 건물이 보이는 당시 안양문화원(현 안양2동 주민센터)이 있던 곳으로 안양 최초의 도서관기능도 겸했지요. 1번국도 오른쪽 끝자락 위로는 하천의 흔적이 보입니다. 이 하천은 수암천인데 당시 만안초등학교 앞과 박달동을 통과한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