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29]1973년 안양 석수동(현 석수체육공원) 있던 탄약고

2026.10.28/ #아카이브 #옛사진 #탄약고 #안양 #석수동 #석수산 #주한미군 #83병기대대 #since1973
안양 석수동에 있던 미 83병기대대가 관리하던 탄약 저장소 모습으로 현재의 석수산 아래 석수체육공원이다. 이 사진은 국사편찬위원회 전자사료관에 있는 안양중학교 식목일 행사 사진을 확대하여 살펴보다 발견해 AI 도음을 받아 탄약고 지역만 재편집했다.
이 기록은 석수산에서 찍은 사진으로 사진속 중앙에 보이는 하얀 컨셋 건물들이 탄약저장소이다. 탄약저장소는 사진위 왼쪽의 작은 산봉우리와 능선 뒷쪽에도 있었는데 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미군이 관리 운영하다 석수동 소재 83병기대대 철수후 한국군이 박달군용지 탄약고와 함께 인계받아 운영한것으로 추정되나 석수동 탄약저장소가 없어진 시기는 확인되지 않는다.
사진 위 오른쪽으로 경부선 철길이 보이고 그옆으로 중앙에 굴뚝이 보이는 건물이 박카스를 생산히던 동아제약 안양공장이다. 동아제약 주변이 현재의 연현마을인데 왼편 안양천변으로 단독주택들이 보일뿐 그아말로 허허벌판이다.
[20240227]1960년대 안양 석수동 산자락의 탄약 저장고
어릴적인 1960년대 안양시 석수동 경부선 철길위 현재의 안양육교 자리에는 철도 건널목이 있었다. 부모님과 서을 나들이 디녀올때 버스가 건널목을 지날 무렵 창밖으로 보면 산자락에 콘셋트 막사 형태의 탄약저장소가 즐지어 있던 모습을 보았다. 이 탄약저장소는 석수동(현재의 석수대림아파트)에 있던 미 8군 예하의 83병기대대가 박달동 군용지 탄약고와 함께 운영하고 관리했다.
미 83병기대대는 특수탄약을 관리하던 부대로 박달동 수리산 자락의 군용지라 불리우던 탄약 벙커에 있던 전술 핵탄두와 로켓을 관리.운용했다. 석수둥에 있던 이 부대는 당시 영내에 PX는 물론 영화관, 소방대까지 있을 정도로 큐모가 컸다. 당시 부대 주변 동네에는 양복점, 양화점, 잡화점, 병원, 여관(Hotel) , 고깃집, 식당 등이 있었고 미군을 상대로 하숙까지 치면서 살았기에 당시 석수동은 안양읍내 변두리에 있었지만 미군 주둔 효괴로 상권과 생활에 있어서 안양읍내보다 더 풍족했던 동네였다.
만안초등학교 다니던 3학년 무렵의 어렷을적 기억으로는 당시 비포장도로였던 안양-안산간 도로에서 핵폭탄을 쏠수 있는 허큘리스미사일을 싣고 가던 대형트레일러 트럭을 목격했었다. 간혹 트레일러와 호위 차량이 지나가면서 사탕과 쵸콜렛 등을 아이들에게 던져주기도 했다. 어느날 학교갔다 귀가하는 길에 미군이 트럭에서 던져주는 노란 과일을 받았는데 껍질에 영어로 'Made in USA'라 적혀 있었다. 집에 가져가 어머니께 드렸는데 당시 그것은 국내에서는 볼 수 없던 아주 귀한 미깡(귤감)이었음은 뒤늦게 알았다.
석수동 미둔부대는 1970년대 중반쯤 철수하고 주공아파트가 들어섰다가 현재 그 자리에는 안양 석수대림아파트 단지가 자리했다. 1번국도(현 만안로)에서 부대가는 길에는 경부선 철길에 땡댕댕 건널목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졌다. 현재의 대림아파트와 경남아너스빌 아파트 단지 사이에는 옛 동네와 골목길의 흔적이 일부 남아있다.
한편 1968-69년 당시 부대 전령으로 근무했던 닐 미샬로프 (Neil Mishalov)가 안양 석수동 미군부대 주변 석수동 사람들과 안양의 풍물을 비롯 한국사회의 생활상을 당시로서는 매우 귀했던 컬러슬라이드와 흑백필림에 담있는데 이 기록이 시공을 초월하여 아주 귀중한 역사 자료가되고 있다. 그는 한국을 떠난지 34년만인 지난 2003년 10월에 안양시 초청으로 한국을 다시 찾았다. 당시 안양시는 시 승격 30주년을 기념해 개최한 안양시민축제에서 안양의 역사와 과거를 담은 '닐 미샬로프 특별전'을 열었으며 그에게 명예시민증을 전달했다. 그는 보관했던 1300여점의 한국 관련 사진 자료들을 2017년 대힌민국 국가기록원에 기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