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11]1964년 안양 망해암 가는 길목에 있던 삼양농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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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안양 망해암 가는 길목에 있던 삼양농원 정문 표지석앞에서 소풍 나온 20대 여성 네명이 기념사진을 찍은 모습으로 국사편찬위원회 전자사료관에서 발견한 기록이다.(원본 보기: https://archive.history.go.kr/image/viewer.do?gid=DKI012_03_04&catalogId=DKI012_03_04V0000_004)
비봉산(과거 망해봉 또는 날미/날뫼라 불렀음) 중턱에 자리한 망해암은 1960년대 안양사람들이 소풍 장소였다. 당시 어디 놀러갈곳이 마땅히 않았던 시절 안양사람들은 안양읍내가 내려다 보이는 망해암과 안양풀(안양유원지-안양예술공원)로 소풍과 마실을 갔다.
망해암에 갈 경우 수푸루지 마을에서 비봉산 정상의 안양무선표지소(비행기등대)까지 놓여진 비포장도로를 따라 걸어가기도 했으나 산을 빙 들아가야 함으로 거리가 너무 멀기에 일반적으로 대더수 사람들은 안양역 연탄공장옆에서 경부선 철길을 건넌후 안양천 미루나무숲을 지나고 안양천을 건너 오시오매점에서 주점부리(칠성사이다, 두꺼비소주, 과자)를 구입한후 망해암으로 올라갔다.
이 길은 안양풀(안양유원지)로 가던 지름길이기도 했다. 안양천을 건너야 하는데 삼양농장앞에 나무다리가 있었지만 안양천에 흐르는 물이 많아 다리가 잠기거나 없을경우 대형드럼통으로 만든 줄배를 이용해 건너야 했다.
삼양농원(현대우아파트)과 안양기독보육원(현 좋은집)에 대해 좀 더 들여다 보자.
1960년대는 경수산업도로가 놓여지기 이전으로 안양2동의 경우 안양천과 비봉산자락 중간에 넓은 밭이 있었다. 산을 바라보면서 좌측으로는 안양기독보육원(현 좋은집과 앙명고와 양명여고 있는땅)이 있었고 우측으로는 삼양농장(현 대우아파트)이 있었으며
삼양농장과 안양기독보육원 중간의 경계 밭에는 망해암으로 오르는 사잇길이 있었다.
비봉산 산자락을 깍아 경수산업도로(현 1번국도)가 놓여지면서 산 끝자락에 있던 삼양농장은 많아 훼손되면서 결국 문을 닫고만다.
삼양농장에는 아름다운 정원이 있었다. 동경상과대학 졸업을 하고 상공부차관 역임했던 윤인상씨는 큰 농가의 적산가옥과 농장을 인수후 농장 경영을 하였으며 정원이란 제목의 책을 펴내기도 했다.
윤인상씨는 정원에 유토피아적 농촌그림을 그리고 수림이 울창하고 맑은 물이 흐르는 풍요한 농촌은 우리가 바라는 우리 농촌의 미래상을 담았다. 또 무었보다도 근검절약으로 부채없는 농촌이라야 한다고 기록하였다.
안양기독보육원이 있던 자리는 일제강점기 오끼농장이 있던 곳이다. 오끼농장은 안양포도 묘목을 들여온 농장인데 당시 만안구 거의 전지역이 농장땅이었다고 한다.
해방 이전에 서울에 있던 경성기독보육원이 이곳으로 이전해 온 이후 안양기독보육원(현 좋은집)이라 불리웠다. 이곳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류화가 나혜석이 말년에 잠시 머물기도 했던 곳으로 또다른 의미가 있다.
경수산업도로가 놓여지면서 안양기독보육원 땅도 많이 훼손됐지만 보육원 운영을 계속하고 1970년대 대지 일부가 해송학원에 매각돼 해송고(현 양명고)와 양명여고가 들어선다. 현재의 양명고, 양명여고 학교 부지도 보육원 땅이었던 것이다.
지금도 좋은집의 대지 면적은 매우 넓다. 경수산업도로변은 물론 안양예술공원 가는 도로옆에 있는 골프장도 좋은 집이 관리운영하고 있다.
이곳에는 근대문화유산이 자리하고 있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 미군과 미국 선교사 등의 지원과 원조로 기독보육원에 여러채의 원아들 숙소와 건물을 신축했다. 당시 지은 건물중 현재 보육원에 두채의 숙소가 남아 있고, 현 양명고 뒷쪽에 석조외벽에 기와를 얹은 집 두채가 남아 있는데 안양시 관내에서 현존하는 건축물중(증개축.리모델링 제외)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