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옛사진읽기

[20261006]1950~60년대 안양사람들 결혼식장 기독보육원 예배당

안양똑딱이 2026. 10. 6. 13:30

 

2026.10.06/ #아카이브 #기록 #옛사진 #since1961 #예배당 #안양기독보육원 #좋은집 #양명고/ 안양2동 자리한 안양기독보육원(현 좋은집) 경내에 있던 예배당(교회)로 1961년 크리스마스때 보육원 직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찍은 기념사진으로 국사편찬위원회 전자사료관에서 발견한 기록이다.

사진속 예배당은 1950년 한국전쟁이 끝난후 미군이 지어준 시설로 1070년대 말까지 현재의 양명고 테니스장 자리에 있었다. 이 예배당은 안양에 예식장이 없을 시절인 1950-1960년대 안양읍민뿐 아니라 시흥군민들의 신식결혼식장으로 자주 애용하던 곳으로 실내가 원목 나무 벽면으로 장식되고 나무 의자가 놓여져 있는 등 분위기가 깔끔하고 좋아 종교 유무를 떠나 결혼식 장소로 인기였던 공간이었다. 양명고 졸업생 사진을 보면 예배당은 학교 건립 이후인 1978년에도 존재했으나 이후 80년대 초 철거됐으며 그 자리에 테니스장이 들어서 지역사에 중요한 가치가 있는 건물이 사라져 아쉽다. 교회가 정확히 언제 철거했는지는 학교측에 확인해야 알 수 있을듯 싶다.

이 예배당은 1978년 무렵까지 있다가 이후 철거돼 사라졌는데 당시의 모습를 기억하는 70~80대 어르신들은 교회 외관은 소박했으며 실내는 벽면과 장식들이 나무로 짜여져 매우 아주 아름다웠다고 회고한다. 이 교회에는 70년대까지 시목하는 목사님이 계셨는데 안양YMCA이사장을 역임하셨던 김영일 목사님 부친이셨다.

사진 증앙에 앉은 이가 의사이자 기독보육원 설립자로 1962년 새싹회 주최 소파상을 받은 오긍선 박사(1878~1963)다. 오긍선 박사는 1919년 서울 서대문 옥천동(玉川洞) 3천 평의 대지 위에 경성보육원을 설립한다. 세브란스 의전 교장 시절인 1936년경에는 넘쳐나는 고아들로 비좁아져 이를 경기도 안양읍 관악산 밑에 전야(田野) 8만평을 사들여 옮긴다. 따라서 이름도 자연히 안양기독보육원이 되었다. 우리 나라 최대의 고아원이었다. 서울에서 경성기독보육원으로 출발한 고아원은 안양에서 안양기독보육원, 해관보육원, 좋은집으로 명칭이 바뀌면서 지리매김한다. 일부 기록에는 유치원과 보통학교도 운영했다고 한다.

한국 첫 여류화가, 문필가, 여성운동가였던 나혜석이 시대적 편견에 떠밀려 유랑생활을 하던 중인 1947년에 이곳 농장에 머물었으며, 당시 이화여대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있던 젊은 시절의 화가 박인경(한국 동양화가의 대가 고암 이응노 화백의 미망인)이 이곳에서 나혜석을 만나는 등 문화 역사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공간이다.

안양기독보육원이 자리한 곳은 원래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의 목장 즉, 마쓰모토 목장(松本牧이 場)이 있던 자리였다. 일제 강점기 당시 일본 토호 오끼이는 1930년대 안양에서 대규모 농사를 지었는데 안양2동 대부분이 그의 농장이었을 정도로 그 면적 어마어마 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과거 안양포도가 유명했는데 사실, 오끼이, 야스에와 같은 일본인 영농가들이 '30년대 중반 일본에서 묘목을 가져다가 재배하여 전국으로 퍼져나간 역사를 갖고 있다.

한편 현재의 좋은집(안양기독보욱원)과 양명고 땅은 일제 강점기 드넓었던 일본인 소유의 오끼 농장중 일부로 1936년 서울에 있던 경성기독보육원이 옮겨와 원아 숙소와 농장 등을 지으면서 터를 잡기 시작했으며.6.25전쟁으로 경남 가덕도로 피난갔다가 다시 돌아와 미군과 선교사 등의 지원 등을 받아 숙소를 짓는 등 자리를 잡았다.

1960년대 말경에는 기독보육원 소유 땅 일부가 해송재단에 매각되며 1974년에 해송고등학교(현 양명고와 양명여고)가 개교한다.

보육원 부지가 학교 부지로 나뉘어지는 과정에서 사진속 교회 건물과 돌을 쌓아 지은 보육원 사무실(현 양명고 음악실)과 의무실로 시용되던 또다른 대형돌집(학교 창고로 시용하다 현재 방치상태)과 일본식 빨간벽돌집(2024년 무렵 철거후 학교 체육관 신축)은 양명고 경내가 된다. 이 건물들은 옛것들이 하나둘 사라져가는 안양으로서는 근대문화유산의 보고라 할 수 있다. 보육원 의무실로 양명고 영선반 창고로 샤용하다 폐가로 방치된 대형 돌집의 경우 하루속히 수리하여 양명고 역사관으로 사용하면 좋을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