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23]안양의 역사와 문화 자료집속 마애종 옛 기록 사진

2026.09.23/ #아카이브 #마애종 #문화유산 #기록 #자료 #옛사진 #안양의역사와 문화/
1998년 2월20일 발행한 안양문화원 향토사료 제1집 "안양의역사와문화" 자료집에 수록된 마애종 기록사진, 단국대학교 사학과 박경식교수팀 조사. 보호각을 씌우기 전의 모습이 담겨있다.
바위에 새긴 마애불((磨崖佛)은 들어봤어도 '마애종(磨崖鐘)'이란 말은 처음 듣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경기도 안양시 석수동에는 우리나라 문화재 가운데 유일하게 바위에 새긴 종(鐘)이 있는 데 그것이 '마애종(磨崖鐘)'으로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62호이다.
현재의 안양시 석수동 안양박물관과 김중업건축박물관 자리 주변 일대는 고려시대 중초사라는 절이 있었으며 통일신라시대때 안양사가 있었다. 두절의 폐사되는 과정은 기록으로 남은것이 없지만, 현재 마애종이 있는 자리는 과거 중초사의 경내로 추정된다.
이 종의 형상은 역사적으로 한국에 전해 내려오는 전통양식의 종모양으로 이를 바위 절벽에 그대로 새겨놓았는데 '조선종'의 양식을 온전하게 갖춘 동종의 모습과 이 종을 치고 있는 불승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바위에 이러한 동종의 모습이 새겨진 것은 이곳이 유일하다고 전해지는데, 이러한 희귀성이 고려된다면 국가지정문화재인 보물로 지정 승격해야 하지않을까 싶다.
이 마애종은 1916년에 조선총독부가 조사하고 제정한 '고적급유물보존규칙'에 따른 '고적급유물등록대장'에 "등록번호 제8호 중초사지마애종"으로 등재되어 있었다.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1934년에 조선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보존령에 따라 처음으로 보물지정이 이뤄질 당시에 중초사 당간지주나 삼층석탑처럼 '보물'의 반열에 오르지 못했다. 다소 의아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도시확장 과정에서 관악산 남쪽 기슭인 이곳까지 개발되면서 일제강점기 절이 있던 자리에 포도밭이 있다가 1950년대 제약회사인 유유산산업 들어선다. 주변 일대는 시민공원 안양유원지(안양예술공원)와 주택들이 들어서고 절의 전각들이 들어서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마애종' 앞에는 안양시 공영주차장이 되어 버려 이제는 절이 있던 옛 자취는 전혀 느낄 수 없다.
한편 안양시는 지난 2001년 마애종이 사람들의 손길에서 벗어나 마모를 막고 비·바람 등 자연재해로 부터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사업비 6천700여만원을 들여 보호각 설치에 나서 2001년 9월 착공을 시작, 4개월 공사기간을 거쳐 2002년 1월에 완공했다. 그러나 조잡하고 옹색하게 만들어진 보호각을 씌우면서 마애종이 마치 감옥같은 창살속에 갖혀버린 형국이다.
이에 제3회 안양세계 마애종 문화포럼'에서 황평우 위원장(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회)은 "마애종을 통해서 세 번 놀랐다. 처음과 두 번째는 경이로움과 감탄사였지만 세 번째는 보호각을 씌우면서 훼손이 시작된 슬픈 마애종의 모습이었다"고 말하고 "국가문화재 신청 주체인 안양시가 적극적으로 국가문화재로 승격시켜 제 대접을 해야 한다"고 애정어린 조언을 던졌다.
그러다가 2020년 천년 마애종이 답답했던 보호각 창살에서 18년만에 해방됐다. 보호각으로 본래의 아름다운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었던 안양예술공원의 마애종은 바위 위를 덮은 보호각은 그대로 두었지만 시야를 가리던 빗살 나무 창살은 제거돼 암벽에 새겨진 스님이 종을 치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됐다. 시야가 탁 트여 뻥 뚫린 모습이 아주 시원해진 것이다.
하지만 안양 마애종 바로 앞쪽에는 커다란 공중화장실이 자리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안양시와 현장을 방문해 안양사, 마애종, 안양에술공원 등 문화 관련 토론, 회의 자리에 참석했던 대다수 전문가들이 마애종앞 화장실을 철거 또는 이전해야 함을 지적했지만 역대 시장 누구 하나 이를 실행에 옮기는 이가 없었다. 마치 안양시의 문화예술 현주소를 말해주듯!!!
범종과 승려의 모습이 바위 위에 높이와 너비가 각각 2m 남짓한 크기로 새겨져 있는 국내 유일의 마애종은 그렇게 오랜 시간 체계적이거나 살가운 보살핌을 받지 못한 채 공중화장실 뒷쪽에 경기도 유형문화재(제 92호)로 자리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