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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905]일제강점기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 수록 안양사 귀부

안양똑딱이 2026. 9. 5. 18:04

 

2026.09.05/ #문화재 #안양사귀부 #삼성산/  일제강점기 조사한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에 수록된 삼성산 능선에 있을 당시의  귀부 기록이다, 현재 안양사 대웅전 앞에 있어 안양사 귀부로 불리우며 높이 1m, 길이 3m, 너비 2.18m. 1980년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93호(,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본래는 안양사 뒷산의 일명 거북골이라는 곳에 위치해 있었으나, 지금은 안양사 법당 앞에 옮겨져 있는 이 탑비는 비신(碑身)과 이수(螭首)가 없어지고 귀부만이 남아 있는데, 지대(地臺)는 몇 개의 장대석(長臺石)으로 구축되어 있고, 굄대와 귀부는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다.

안양사 귀부는 대체로 원형을 유지하고 있고, 귀부 주변으로 돌난간을 둘렀으며, 비좌 상부에는 빗물이 비신홈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아크릴판을 올려 놓았다. 귀부 등에는 육각형으로 된 2중 귀갑문이 조각되었다. , 뒷발은 모두 전면을 향하며, 비늘이 시문되었다. 앞발은 발톱이 4조이며, 뒷발은 2조이다. 꼬리는 좌측으로 뻗어있다. 귀부는 눈과 이빨 등이 묘사되었으며, 턱 아래쪽은 수염이 내려와 목줄기와 맞닿아 있다. 양 뺨에는 갈퀴가 있고, 목에는 비늘이 표현되었다. 귀부 등에는 장방형 비좌가 마련되어 있다. 비좌 측면에는 장방형 테두리 안에 운문이 조각되었고, 상면에는 24엽 단판 복련을 시문하였다. 이 귀부는 전체 조각수법과 양식 등으로 보아 고려중기경에 건립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원래의 뒷산에서 현재의 안양사로 이운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이나 『여지도서與地圖書』 등의 문헌기록에 안양사 경내에 김부식金富軾(1075~1151)이 찬한 비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귀부의 제작시기가 이와 비슷한 시기이고, 안양사安養寺 명문 기와가 출토된 중초사지中初寺址가 직선거리로 700여 미터 떨어진 위치에 있어 원래 안양사에 있었던 귀부일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생각된다.

 

귀부옆에는 석조부도가 있다. 이것 또한 원위치는 알 수 없으나, 안양사 인근 골짜기에 흩어져 있었던 것을 옮겨 놓은 것이라 한다. 현재 하대석, 상대석, 옥개석만이 잔존하고, 나머지는 결실되었다. 상대석은 현재 뒤집어진 상태이다. 상대석은 연잎형 연화문 사이에 간엽을 조각하였으며, 팔각형 괴임과 받침부재로 볼 때 결실된 중대석과 탑신석은 평면 팔각형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옥개석 하부에는 3단의 각형 옥개받침을 마련하였다. 옥개석 하부에는 추녀 위치에 얇은 음각선이 새겨져 있으며, 상부 낙수면은 완만하게 치석하였다. 낙수면 합각부에는 삼각형으로 뾰족하게 돋을 새김하여 귀꽃을 표현하였다. 옥개석 정상부는 1단으로 상륜받침을 마련하였고, 그 위에는 화문이 새겨진 복발석이 있다. 복발석 상부에는 원형 홈이 있으며, 이로 보아 찰주를 세워 여러 부재를 결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관련 기록이나 전하는 내용이 없어 승탑의 주인공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형태나 치석 수법으로 볼 때 승탑은 고려중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