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무]일제강점기 안양의 해관 '오긍선'과 해관 '안상호'

[이태무님이 sns 페이스북에 올린글]
평소에는 지나칠 연예인 기사에 눈이 꽂혔다
하영(본명 안하영)의 집안 자랑 이야기이다
그의 증조부가 해관 (海觀) 안상호란다
해관이란 호에 관심이 갔다
1) 해관 오긍선과 해관 안상호
참 공교롭다
안양 소재의 <좋은집> 전신인 한국 최초의 복지재단 ‘해관보육원’ 창팁자 해관(海觀) 오긍선과 안양에서 친일 지주로써 많은 재산을 축적한 해관 (海觀) 안상호와 호도, 의사라는 직종도, 일제강점기라는 시대도, 행적과 관련된 ‘안양’지명이 같다
그래서 복지재단 '좋은집' 설립자를 곡해하겠다
그러나 그들은 행적은 비슷하지만 삶은 달랐다
친일파라고 지목 받기도 하는 오긍규는 일제가 강요한 창씨.개명을 거부하는 선비 기질이 엿보이고, 복지사업에 최선을 다했지만 안상호는 자수성가로 수천석을 거두는 안양의 지주가 되어 당시 시흥군 안양리에 일본인 마름을 두었다 그 마름이 소작인에게 만행을 저지르다 살해되는 사건이 있었다
2) 친일파 해관 안상호
일본인을 마름으로 둘 정도라면 일재 강점기에서 권력은 가없이 크겠다
안상호는 귀족 친일파가 결집된 1-3대 경성부협의회 의원이었다.
"자신은 조선인이 아니라 사실상 일본인이라"고 자처하는 매일신보에 인텨뷰 기사가 있다 3.1만세운동 이후 일제가 선전하던 문민정책의 하나 인 일본인과 결혼하여 평생 조선말을 쓸 필요없는 일 선부일처(鮮夫日妻)의 표본이 되었다 이완용이 고문인 대정친목회에 가입하는 등 일제에 부역하는 친일 행보를 보였다
고종 독살설 의혹도 있다 영친왕의 비 이방자여사는 정상호가 고종을 독살하였다는 설이 있다고 했다 이재명 의사가 피습한 이완용을 수술 치료하여 살린 의사가 안상호다 물론 죽어가는 강아지 생명도 귀하게 여겨야함은 맞지만 상대가 이완용이라는 점에 안중근, 이봉창 의사등의 충절이 겹쳐져 고개를 가로젓게한다 그러기에 안상호가 친일명 사전에 등록이 안되었다고 친일파가 아니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군사적으로 협력하거나 세금을 징수하는 등을 한 이들도 매국노로 규탄받지만, 정서적 혐오와 모멸감을 느끼는, 동포를 멸시하는 현상을 남긴이들도 민족의 뼈속깊이 아픔을 새겨긴 매국노다
안양시 측은 과거 공식 블로그를 통해 ‘앞장서서 일본 지도자를 대항해 행동으로 보여주는 인물들도 있지만, 꼭 그것만이 아닌 자신의 영역에서도 독립운동을 펼칠 수 있다’며 안상호를 '독립운동가'로 소개되었다고한다 가소롭다
경기도는 ‘안양리 시장’ 에 있는 '안상호 전의(典醫) 송덕비'가 경기도 친일문화잔재 아카이브에 '친일 시설'로 등록되어 있다니 비교가 된다
서이면 사무소로 친일 찬양에 자유롭지 못한 안양시다 안양시만 한정하면 일제가 수탈하던 시기에 면서기로 땅을 축적하여 후손이 할애비를 기리는 서이면사무소를 건립하고, 친일 행위등으로 지주가 되어 얻은 막대한부를 누린 땅을 희사하여 추앙받는 도시가 되었다
그나마 후자의 경우는 박수칠만 하겠다
안상호의 묘는 군포시 금정동에 있었는데 산본신도시개발로 1990년 4월 경기도 안성군 이죽면 당목리로 이장되었다.
3)안상호의 장남 안정호
안상호의 장남 안정호가 안양시 만안구 안양1동에 안정호 치과의원을 개원했다하니 안양의 제1호 치과가 아닐까싶다
아버지 안상호에게 안양 구시장, 남부시장 일대의 많은 땅을 물려받아 안양지역 최대 지주였던 안정호는, 안양중학교 및 안양공업고등학교의 설립에 크게 공헌했다고도한다 1947년 안양시 안양3동의 땅 10만여 평을 희사하여 군포의 지주이자 대림 건설 창업주 이재준의 친형이며 국회의장을 지낸 이재형의 희사금으로 안양중을 설립했다고 한다
6‧25전쟁이 끝나자 비산대교에서 현재는 아파트가 돠 된 한국제지에 이르는 안양천 제방을 자비로 축조도했다고 하고 송씨 일가가 운영했던 비산동 평화보육원에도 일만여평 넘는토지를 희사했다고한다
4)가수 희영의 조부 안부호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이 행한 비극의 역사 나병환자가 수용된 소록도에서 의사로 종사했다
“가도 가도 붉은 황토길”로 시작하는 한하운의 ‘소록도 가는길’이나 ‘보리피리’의 시는 감성어린 초딩시절 나의 암송 싯귀절이었다 장성해서 전라도 여행갈때는 황토길 찾느라 두리번거렸었다
아버지는 내게 소록도 풍경이 무지 아름답다고도 하셨다 그러나 한센병환자들의 고통과 아픔과 차별에는 별말씀이 없으셨고 사람의 간을 먹는다는 괴기스런 말씀뿐이었다
그들의 고통과 아픔을 알게된 시기는 한참 철이 들고 나서였다
그 잔혹란 시절에 소록도에 종사했다는 사실만으로 한센인에 대한 집단학살과 강제노동, 정관수술과 낙태수술 등의 인권침해 사례에 저촉여부를 따지는 일은 증거나 증언이 없는 한 아니겠다
5)페북을 보고
어느 페친이 친일파 후손에 비난함은 연좌제이고 어느 기사에는 친일강박증’이라 말한다
"달을 가르키는데 손만 쳐다본다"라는 말이 꼭 들어맞는다
을미사변 당시 명성황후 살해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던 조선인 우범선의 아들 우장춘박사는 모든 한국인이 존경한다
김동리의 아들이 자신의 아비의 친일행적을 담담히 책으로 냈고 저항시인으로 이름났던 김동명의 아들이 아비의 친일행적을 고백했을때도 그들을 비난하기가 아닌, 예찬하고 용서가 되었다
친일파가 득세하여 자손대대로 감추고 독립투사인척 자랑하는 후손의 행태를 비난 한 것일 뿐이다
경상도 거부였던 백산 안희제 집안도, 단재 신채호 집안도, 윤봉길의사 집안도 직계 후사가 끊겼고 중앙아시아까지 끌려갔던 홍범도장은 이제야 그의 유골이 이땅을 찿는 슬픈역사를 지닌 민족이 친일조상을 모르고 자랑해도 그것을 타박하지 않음은 가당치 않다
부친의 친일을 애국으로 표현한 김무성이나 조부가 일제 면장을 해서 친일 면사무소를 복원하는 후손의 잘못을 비난하는 것이지 그들의 친일파 후손이라고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독립투쟁 자손은 3대가 망하고 친일파 후손은 3대가 흥청인다는 말이 괜히 나온게 아니디
연좌제를 논 하기전 사태의 본질을 구별해라
6)맺는말
하영이 사과했다
그러면 됐다 앞으로도 조상을 바로알고 잘못을 반성하고 바르게 처신하면 된다
편집자주: 글쓴이 이태무님은 과거 안양시민신문에서 편집위원과 집필위원, 총무국장으로 활동했으며 2013년 지역 언론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전국지역신문협회 등이 주관하는 시상식에서 자랑스런 기자상을 수상했다.
2010년 지방선거 당시 진보·개혁 성향의 시민사회단체들이 모인 '6·2안양희망연대(안양지방자치희망연대)'에서 공동집행위원장을 맡아 야당 후보 단일화와 선거연합을 이끄는 활동을 했다
2010년 민선5기 최대호 안양시장 당선자 시절, 시장직 인수위원회의 인수위원 11먕증 한명으로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