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희]1920~30년대 안양 밤 줍기 행사로 본 근대 도시민의 여가

1920년대 이후 경성 및 주변 지역에 관공서와 사업체들이 대거 들어서면서 일하는 사람의 수도 증가하면서 한국 사회에는 일요일 문화가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주휴제와 일요일 문화가 확산되면서 도시민의 여가 활동은 영화·공원 등의 도심 여가에서 하이킹·등산·밤 줍기와 같은 근교 행락으로 확대되었다.
이 과정에서 경성과 철도로 연결된 안양은 관악산·삼성산 하이킹과 안양풀을 중심으로 한 대표적인 근교 여가 공간으로 부상하였다. 특히 안양에서는 언론사 등이 주최한 밤 줍기 행사가 열렸고, 안양풀과 안양역은 관악산·삼성산 등산코스의 출발·도착 지점으로 활용되면서 안양이 도시민의 휴식·행락 공간으로 자리 잡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2. 안양의 밤줍기 행사
1920년대 이후 도시민에게 일요일과 휴일을 활용한 여가문화가 자리 잡았고, 1930년대에는 가족과 함께 휴일을 보내는 문화가 확산되었다. 이에 따라 여가활동도 영화·연극·공원 나들이에서 점차 교외의 자연을 찾아가는 형태로 확대되었다.
특히 봄에는 벚꽃놀이, 가을에는 등산과 단풍놀이를 즐겼으며, 9~10월에는 고기 낚기와 밤줍기를 위해 경성 근교로 나가는 교외 나들이가 성행하였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안양은 대표적인 밤줍기 장소로 등장하였다. 동아일보사·조선일보사·경성일보사·매일신보사 등이 안양에서 밤줍기 대회를 개최했으며, 근우회 경성지부의 밤줍기 행사가 큰 인기를 끌었다.
밤줍기와 같은 교외 나들이는 당시 유행하기 시작한 하이킹 문화와도 연결된다. 신문에서는 도시생활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하루를 보내는 것을 새로운 여가활동으로 소개했고, 관악산과 삼성산은 경성 근교의 인기 있는 하이킹 장소로 자리 잡았다.

3. 안양유원지의 변화와 쇠퇴
안양유원지는 1970년대 초까지 서울 근교의 대표적인 휴양지로 많은 행락객이 찾았으나, 산업화와 도시화에 따른 자연환경의 변화와 개발의 제약, 1977년 수해로 인한 시설 피해와 복구 지연 등이 겹치면서 점차 활력을 잃기 시작하였다. 특히 수도권에 새롭게 등장한 다양한 관광지(서울랜드, 자연농원 등) 와의 경쟁에서도 밀리기 시작하였다. 이후 시설 노후화가 지속되면서 1980~1990년대에는 유원지로서의 기능과 매력이 크게 약화되어 본격적인 쇠퇴의 길에 들어섰다
4. 마무리
안양의 밤나무와 밤줍기 행사는 단순한 농산물과 계절 행사를 넘어, 1920~30년대 도시민들이 자연을 찾아 교외로 나서기 시작했던 근대 여가문화의 한 모습을 보여준다. 가을이면 사람들이 안양을 찾아 밤을 줍고, 관악산과 삼성산을 오르며 자연 속에서 휴일을 즐겼다. 이후 도시화와 여가문화의 변화 속에서 이러한 풍경은 점차 사라졌지만, 당시의 신문기사와 사진, 지명과 기록은 안양이 한때 사람들의 가을 나들이와 휴식을 품었던 장소였음을 보여준다.
[20240719]안양 관악산 옛모습 삼성기유첩(三聖記遊帖) 공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