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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13]일제강점기 안양의 땅부자였던 '안상호' 누구인가

안양똑딱이 2026. 8. 13. 12:55

 

'친일' 하영 증조부가 독립운동가?역대급 망언 오를 안양시 블로그/ 연합뉴스TV(YonhapnewsTV)

https://www.youtube.com/watch?v=APFF3mbKXAk

 

하영 집안 안양 땅의 비밀증조부 안상호 송덕비까지 '친일 잔재'로 분류/ YTN

https://www.youtube.com/watch?v=24YyyxlGFZs

 

'친일 행적' 배우 하영 증조부 독립운동가로 소개한 안양시

https://www.youtube.com/watch?v=wx8ETUZqXCY

 

최근 배우 하영의 집안 자랑으로 인해 논란이 되고 있는 인물로 일제강점기 안양의 땅부지였던 '안상호'의 친일 행위가 하나둘 파묘표되고 있다. 

 

광복 81주년을 맞이하여 발생한 안상호 사태를 통해 다시한번 친일잔재 청산 사업의 중요성을 확인하게 되었다. 광복절을 통해 우리는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치신 애국지사들의 뜻을 계승하고, 동시에 안상호사태를 통해 일제에 부역한 친일반민족행위자들과 우리 사회에 남아있는 친일잔재를 청산하는 계기로 삼길 바래본다.

 

배우 하영(33·안하영)이 지난 2026 8 7일 방송된 KBS 2TV '옥탑방의 문제아들'에 출연해  4대째 내려온 의사 집안이라면서 증조부를 "일본에서 의학을 공부하신 후 한양에서 최초로 양의원을 개원하셨고, 고종 황제를 진료하셨다"고 소개했다. 이후 그의 증조부로 안상호가 지목되며 친일 논란이 일면서  그의 일제강점기 활동이 재조명되면서 역사적 기록들이 하나둘 드러나고 있다.

 

이와관련 언론보도를 살펴보면 안상호가 살았던 안양시에 송덕비가 있었으며 안양시는 공식블로그에 안상호를 독립운동가로 소개하는 게시물을 올렸다가 이번 논란 이후 게시물을 비공개 처리한 사실도 드러나 물의를 빚고 있다.

 

언론보도를 통해 집중조명되고 있는 안상호그는 누구인가 살펴본다

 

안상호는 1898년 도쿄 자혜의원학교에서 공부하여 1902년 일본 의술개업시험에 통과하여 의사가 된 인물로 1916년에는 매국노 이완용을 비롯해 민영기, 한상룡, 조진태 등 거물급 친일파가 만든 대정친목회의 평의원이 되었다. 대정친목회는 1916년 일제의 식민 지배 질서에 순응하며 국가 경축일을 준수하고 식산흥업(산업진흥) 장려하기 위해 만들어진 친일단체이다. 그리고 많은 땅을 소유하고 있었던 안양에서는 <안상호 전의 송덕비>가 세워졌다고 한다.

 

경기도 메모리 디지털 아카이브에 따르면 '안상호 전의(典醫) 송덕비'는 경기도 시흥군 안양리(현 안양시 만안구 안양동)에 설치돼 있으며 경기도 친일문화잔재 아카이브에 '친일 시설'로 등록되어 있으나 현재 현존하지 않는다.

 

안상호 송덕비는 건립은 안상호가 1927년 세상을 떠난 직후인 1927년 말에서 1928년 초 사이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192815일자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건립 사실이 보도되었는데 소작인들이 자발적으로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세운 비석이라고 기록돼 있다.

매일신보. 1928.1.5

 

매일신보는 "안상호는 병원을 개업한 이래 자수성가하여 현재는 수천 석의 거부(부자 가운데에서도 특히 큰 부자)라는 칭송을 듣고 있다. 시흥군 안양리에는 그가 소유한 토지를 소작하는 소작인들이 세워준 돌로 만든 송덕비가 있다. 그의 가정생활을 살펴보면, 22년 전에 도쿄에서 결혼한 일본인 아내 이소() 여사는 부덕(부녀자의 덕행)을 갖춘 인물로, 슬하에 43녀의 7남매를 두었다. 안상호는 조선인으로서 가장 먼저 일본인 부인을 맞이한 선구자였다"라고 보도했다.

 

또한 "경성의대 치대를 졸업하고 안양시 만안구 안양1동에서 안정호 치과의원을 개원하여 의료 활동에 종사하였다. 해방 후에는 경제계에 투신하여 조선파이프 공장장을 역임하였다. 아버지 안상호 때부터 안양 구시장, 남부시장 일대의 많은 땅을 소유한 안양지역 최대 지주였다. 1947년 안양시 안양3동의 땅 10만여 평을 희사하여 안양중학교 및 안양공업고등학교의 설립에 크게 공헌하였다. 이어 안양에 있는 보육시설에도 15000여 평을 희사하였고, 625전쟁이 끝나자 비산대교에서 한국제지에 이르는 안양천 제방을 자비로 축조하는 등 안양지역 발전에 기여하였다"라는 기록도 있다.

 

반면 안상호는 191611월 일제강점기 조선인 상류층을 중심으로 결성된 친일 단체로 알려진 대정친목회 결성 당시 평의원으로 참여한 기록이 있다. 이 대정친목회는 친일반민족행위자 민영기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총재가 회장을 맡아 설립한 실업인 단체다. 이완용이 고문을 맡았으며 조중응, 송병준, 이윤용 등 당대 친일반민족행위자 상당수가 회원으로 참여했다.

 

뿐만 아니라 안상호는 이완용을 살린 의사 중 한 명이라는 기록도 있다. 국사편찬위원회 국사관논총 제32집 수록 논문에 따르면, 이완용은 19091222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독립운동가 이재명 의사에게 단도로 어깨와 복부를 찔리는 피습을 당했다.

 

하지만 이완용 암살은 미수에 그쳤다. 이완용이 세 번이나 찔리고 살아난 데는 우리나라 최초 흉부외과 수술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의료진 중에 안상호의 이름이 포함된 것. 자료에는 안상호를 비롯해 한성병원의 학전 의사, 안동병원장, 대한병원의 국지 원장과 고계 부원장, 전의 박종환 등이 치료에 참여해 이완용의 목숨을 구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때 암살 시도로 체포된 이재명 의사는 사형선고를 받고 이듬해 930일 순국하였다.

 

안상호가 친일행위를 했지만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과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보고서>에 등재되어 있지는 않으나 경기도가 2019년도에 진행한 <경기도 친일잔재 조사연구용역>에 안상호 이름이 올라와 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1991년 설립하여 18년을 연구하고 자료를 정리하여 2009년에 <친일인명사전>을 편찬하였다. 4389명의 친일파들이 올라가 있으며 지금도 연구되고 있어 추후 개정을 통해 더 많은 친일파들이 올라갈 예정이다. ,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의 수는 2009년을 기준으로 4389명이며, 현재의 기준으로는 더 늘어난다.

 

민족문제연구소 방학진 사무처장은 안상호(1872~1927)에 대해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될 정도는 아니지만 친일파가 맞다"고 밝혔다. 그는 13YTN 라디오 '장성철의 뉴스명당'에 출연해 이토 히로부미를 위한 추모준비위원회에 이름을 올렸으며, 조선총독부 총독 자문기구 성격인 경성부협의회 의원이었고, 항일 운동을 방해하는 목적의 동민회에도 참여했다고 덧붙였다.

 

<친일인명사전><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보고서>를 보완하는 사업이 바로 광역 및 지방정부에서 진행하고 있는 연구용역이다. 2010년 이후 새롭게 친일인물로 결정된 사람들은 광역 및 지방정부의 친일잔재 연구용역을 통해 알려지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2019년에 진행된 <경기도 친일잔재 조사연구용역>으로 이 사업을 민족문제연구소가 수행하여 경기도내 지역에서 활동한 적극조력자들과 친일잔재들을 함께 조사하여 보고서로 작성하여 아카이브하였다.

 

 

안상호의 사례를 통해 지역의 연구용역 조사가 중요함을 확인할 수 있다. 서울에서 활동한 거물급 친일파들은 잘 알려져있지만 지역에서 활동한 일제 적극 조력자들은 잘 알려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과거 시흥군(안양군포의왕과천)에도 일제강점기 수많은 친일협력자들이 존재하였지만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시 또는 문화원에서 연구되지 않으니 시민들은 모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광복 81주년을 맞이하여 발생한 안상호 사태를 통해 다시한번 친일잔재 청산 사업의 중요성을 확인하게 되었다. 광복절을 통해 우리는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치신 애국지사들의 뜻을 계승하고, 동시에 안상호사태를 통해 일제에 부역한 친일반민족행위자들과 우리 사회에 남아있는 친일잔재를 청산하는 계기로 삼길 바래본다.

 

역사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듯이 일제강점기 친일잔재 또한 하루 아침에 청산되지 않는다. 친일잔재를 청산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 및 지방정부가 지속적으로 연구해야하며 그 내용을 시민들에게 알려야한다.

 

안양시는 과거 공식 블로그를 통해 안상호를 '독립운동가'로 소개했다가 이번 사태이후 게시물을 비공개로 전환했다고 언론의 집중 관심지로 떠올렀다. 당시 게시물에는 안상호에 대해 "독립운동이라 하는 것은 앞장서서 일본 지도자를 대항해 행동으로 보여주는 인물들도 있지만, 꼭 그것만이 아닌 자신의 영역에서도 독립운동을 펼칠 수 있다는 것도 느끼게 해준 인물"이라는 내용이 담겼다고 하니 그야말로 친일인물을 미화하여 독립운동가로 둔갑시킨 것이다.

 

해당 게시물은 지난 2020년 시민기자단이 광복 75주년을 맞아 안양시의 독립운동가를 찾아서라는 주제로 작성했다.

 

게시물에는 취재를 통해 처음 알게 된 안상호 선생님. 안양의 독립운동가가 이리도 많다니라며 독립운동이라 하는 것은 앞장서서 일본 지도자를 대항하여 행동으로 보여주는 인물들도 있지만 꼭 그것만이 아닌 자신의 영역에서도 독립운동을 펼칠 수 있다는 것도 느끼게 해준 인물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해당 글은 최근 안상호의 일제강점기 행적이 알려지며 논란이 불거진 뒤 지난 11일 비공개로 전환됐다.

 

안양시 관계자는 해당 글이 게시될 당시에는 최근 알려진 안상호의 친일 행적을 파악하지 못한 상황이었다최근 관련 내용이 알려지면서 게시물을 비공개 처리했다고 밝혔다.

 

안양시에는 경부선 복선 공사시 철도 자갈을 채취했던 병목안채석장, 일본군 무기고가 있던 박달군용지, 일본인 안양읍장이 설치하고 일본인 경기도지사가 표지석 휘호를 썼던 안양풀, 수탈의 행정기관을 복원한 서이면사무소 등 수탈과 친일 잔재의 흔적들이 남아있다.

 

특히 현재 안양시의 애국지사로 김국주(옹), 원태우(지사), 이재천(지사), 이재현(지사), 한항길(지사), 이영래(지사), 하영홍(지사), 등 7명을 거론한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안양 지역에서 활동했거나 안양 출신인 독립운동가들의 행적을 낱낱이 추적하여 조사한바  21명의 독립운동가의 삶과 투쟁을 학인했다.

 

광복회 안양시지회는 지난 2023년 10월 28일 『안양의 독립 운동사』증보판을 발행했다. 이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점 희미해지는 독립운동의 처절하고도 슬픈 이야기로 정부로부터 훈·포장을 받은 안양의 독립유공자의 공적과 함께 서훈을 받지 못했으나 항일 활동이 확인된 항일운동가, 일제 감시대상 인물카드 등을 통해 발굴된 숨은 영웅들인 일제 감시 대상 인물 등을 재조명하는 등 기존 기록의 오류를 수정하고 누락된 부분을 대폭 보완하였다. 

 

최근 일부 지자체에서 일제강점 역사 바로 칮기 움직임이 일고있다. 부천시는 내년에 '부천시 친일잔재 연구용역'을 한다는 계획이다. 지금은 소멸된 행정구역으로 과거 시흥군의 중심이었던 안양시도 광복회에서 발굴한 숨은 영웅들에 대한 서훈 추진과 함께 연구용역을 통해 과거 시흥군 지역에서 활동한 친일파들과 친일잔재를 밝혀 시민들에게 공유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