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04]조선시대 수원별로(水原別路) 통과 구간

2026.08.04./ #아카이브 #옛시조 #수원별로/ 수원별로(水原別路)는 조선시대 한양에서 수원 화성을 거쳐 정조의 능인 융릉(현륭원)으로 이어지던 주요 간선도로였다.
1800년대 중반에 이르면 이전에 9대로(九大路) 체계에서 통영중로가 빠지고 대신 봉화로와 수원별로가 추가되기 시작하였다. 1863년 김정호의 "대동지지(大東地志)"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한양에서 수원으로 가는 길은 남대문 ~ 삼각지 ~ 동작대교 ~ 사당 ~ 남태령 ~ 과천 ~ 인덕원~ 의왕시청별관(사근 행궁) ~ 층 문의 호남으로 가는 삼남대로를 따라가는 경로가 일반적이었다. 정조 재임 초기에는 아버지 사도세자 의 무덤이 있는 화성 현릉원까지 가는 능행차를 삼남대로를 통해 갔는데, 이때 봉담~과천 고속화도로 의왕 1C 부근 청풍 김씨의 거두 김징의 묘를, 과천 가자우물 근처에서는 그의 손자 김익로의 묘를 통과해야만 했다. 정조는 현륭원까지 능 행차를 13차례 했는데, 처음에는 삼남대로를 주로 이용했다. 하지만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 연을 수원에서 연 1795년(정조 19년)부터 정조는 노량나루를 지나 금천과 안양을 거쳐 현륭원에 참배를 가는 금천로(시흥로)를 개척했다.
청풍 김씨는 노론의 핵심 세력으로 영조 때 정조의 아버지 사도 세자의 탄핵을 주도적으로 이끌었었다. 마음이 불편 했던 정조는 동작나루 대신 노량진을 지나 금천과 안양을 거쳐 현륭원에 참배를 가는, 약 64km에 달하는 수원별로 인 금천로를 개척했다. 금천(衿川)이라는 지명도 '새로운 흥성'을 뜻하는 시흥(始興)으로 바꿨다. 여기에서 시흥은 지금의 경기도 시흥시가 아니라 서울시 금천구 시흥동 일대를 말한다.
시흥로의 완성으로 1795년 윤2월 현륭원 참배와 어머니 혜경궁홍씨 회갑연을 위한 행차가 행해지자 시흥로는 삼남지방으로 통하는 조선의 으뜸의 간선도로가 됐다. 이 길은 일제강점초기 1등도로가 됐다.
이후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시흥을 중심으로 한 시흥로는 1938년 국도 제도가 도입되면서 파주 ~ 서울 ~ 목포로 이어지는 우리나라 대표 국도인 1번 국도가 되었다. 원래의 삼남대로 경로인 남태령 ~ 과천 수원 구간은 지지대 고개가 있는 등 길이 험하다는 이유를 덧붙여 의도적으로 피해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떨어졌다. 결국 정조의 효심이 우리나라 대표 국도의 운명을 바꾼 셈이다.
정조가 머물던 창덕궁에서 출발해 아버지 사도세자를 모신 현륭원에 이르는 길을 능행길(陵行路)이라고 하며. 효를 다하는 길이라 하여 효행길(孝行路)이라고도 부른다. 능행길 위에는 현릉원을 찾아가는 행차길에 잠시 머물며 쉬어갈 목적으로 행궁들을 설치했는데, 초기의 과천행궁과 사근행궁, 이후 시흥행궁, 안양행궁, 안산행궁, 화성행궁 등 6곳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