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04]시흥공립보통학교 제7회 졸업기념 사진(since1919.03)

2026.08.04/ #아카이브 #시흥 #금천 #기록 #옛사진 #since1919/
1919년 3월 25일자로 표기된 경기도 시흥공립보통학교 제7회 졸업기념 사진으로 국사편찬위원회가 수집한 박찬호 소장 사료다. 사진에는 교사들이 제복을 입고 칼을 들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시흥공립보통학교는 현재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동에 위치한 시흥초등학교(개교 1911년 7월 1일)로 안양에 학교(안양보통학교)가 처음 생겼던 해인 1929년까지 안양에 거주하던 학생들이 통학하던 인근 학교(군포,과천,시흥,안산)중 한곳이다.
일제강제기 초반에는 안양에 학교가 없었다. 그 당시 학생들은 먼 거리에 위치한 군포, 과천, 시흥, 안산에 있던 보통학교로 등교해야 했다. 학교 건립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 안양 유지들과 주민들이 기성회를 조직하고 학교 설립에 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안양산업사 엄기승 사장과 당시 초대 서이면장인 조한구 씨도 학교 건립 모금 활동을 벌였다.
그러나 자금은 당초 계획같이 잘 모이지 않았다. 이런 사정을 안 동아일보에서 전국에 대대적인 홍보를 해줬다. 전국에 있는 많은 국민들이 성금 모금에 동참했고, 일본인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모금운동은 성공리에 이뤄졌다.
국민들의 성원에 힘입어 1929년 12월 20일 안양공립보통학교가 개교했다. 현재 안양초등학교의 전신이다.
보통학교는 1906년 「보통학교령」에 따라 설치된 초등교육기관이다. 국권을 상실한 뒤에 발표된 제1차 「조선교육령」(1911년), 제2차 「조선교육령」(1922년)에서도 보통학교라는 이름은 유지되었다. 다, 일어 보급 등을 통해 한국의 식민통치에 앞장섰다는 점에서 과거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보통학교는 1938년 제3차 「조선교육령」을 거치며 명칭이 소학교로 변경되었다.
참고로 안양은 1905년 경부선 개통과 안양역사 개설 이후 역 주변 주거지가 점차 커지면서 마을을 형성해 점차 인구가 늘어나면서 1914년 호계동에 세워진 과천군 서이면면사무소 건물이 1917년 안양1동으로 이전해 안양면사무소 개설되고 관공서들이 자리하기 시작하면서 점차 근대 도시(마을)로서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곳으로 일제 강점기인 1920년대 이전만 하더라도 군포장이 섰던 군포와 한양 초입인 과천이 더 컸으며 안양에 초등학교가 없어 당시 학생들은 군포, 과천, 안산, 시흥으로 등교했다.
안양에 초등학교가 개교하기 이전 안양에 사는 학생들이 통학했던 주변 학교들을 보면 시흥초교(1911년 7월1일 개교), 안산초교(1912년 4월1일 개교), 과천초교(1912년 4월1일 개교)와 군포초교(1920년 4월 1일 개교)가 있다.
한편 시흥초교가 자리한 금천구 시흥동은 '시흥'이라는 지명과 땅의 역사를 함께 간직한 곳이다. 역사 속에서 시흥은 1795년(정조 19) 금천현이 '시흥현(始興縣)'으로 바뀌면서 등장했다. 현재의 시흥동은 일제강점기 시흥군 동면 시흥리에 해당하는 곳으로 1963년 1월 서울에 편입됐다.
시흥현과 시흥군이던 시절 '시흥관아', '시흥행궁', '시흥군청'이 소재하는 중심지였지만 서울 편입 이후 서울의 외곽 지역으로 위상이 많이 축소됐다. 특히 1989년 시흥군이 해체되는 과정에서 경기도 시흥시가 분리 독립되면서 '시흥' 지명을 가져가 동일한 지명으로 인한 혼란이 가중됐다. 현 시흥시는 '소래'시가 되었어야 따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