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지역얘기/담론

[임재연]안양의 지명(꽃메산, 호계동, 박달동) 관련 이야기

안양똑딱이 2026. 6. 29. 16:06

 

꽃메산의 땅이름

안양 석수동에 '꽃메산' 이란 예쁜 이름의 산이 있다. 어쩜 이름을 이리 아름답게 지었을까? 이 이름의 유래가 궁금했는데 찾을 수 없었다. 오랜 생각 끝에 다음과 같이 추론해서 그 유래를 풀어 본다.

우선 지도를 보면 안양천은 백운산(광교산 옆)에서 발원한 물이 지지대고개 아래 의왕을 거쳐 군포의 여러 하천과 안양의 호계천(복개).학의천, 수암천, 삼성천 등의 지천의 물과 합류하여 안양철교(기차)에서 급격하게 꺾여 석수동을 지나 박달동 하수종말처리장 쪽으로 흘러간다.

석수동 럭키아파트를 지나면 안양천 쪽으로 불쑥 튀어나온 산이 눈에 들어온다. 바로 꽃메산이다. 그 안쪽으로 현재 석수도서관 아래 마을을 꼬챙이 마을이라고 원주민들은 부른다. 그래서 새로 생긴 초등학교 이름을 화창 초등학교라고 지었다. 꼬챙이를 한자로 음역한 것이다.

안산 바닷가 쪽에 '고잔'이란 곳이 있다. 고잔의 말뿌리는 '곶안'이다. 곧 '곶'(바닷가 쪽으로 툭 튀어나온 지형을 이름하여 고유어로 '곶'이라 한다. 호미곶. 장산곶 등 이 그 예이다)+'안'(곶의 안쪽)=곶안>고잔 이 된 것이다.

따라서 원주민들이 아직도 이곳을 꼬챙이 마을 이라고 부르는 것은 '곶메 안쪽 마을'이란 뜻으로 '곶 안(창이)'마을이 꼬챙이 마을이 된 것으로 보인다.

꽃메산도 곶뫼(안양천 쪽으로 불쑥 솟아 오른 산)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호계동의 호계는 虎溪라는 한자를 쓴다

옛 지도를 보면 벌말(평촌)은 대단히 넓은 평야지대로 큰 농사를 짓던 곳이고 중간에 큰 내가 뻗어 있다. 대대로 관개(灌漑)공사를 했을 것이고 그 내는 곧게 뻗은 큰 내였을 것이다. 새로 고쳐낸 이 내를 농민들은'곧게 뻗은 내'라는 의미로 '뻗은 내'로 불렀을 것이고(이러한 사례는 전국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뻗은내>뻗내>범내>(한자로 음차)호계(虎溪) 가 된 것 같다.같은 지류가 흐르는 범계동은 호랑이를 우리말로 범이라 하는데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덧말 : '뻗은 내'를 '버드내'로 부르다가 엉뚱하게도 '유천(柳川)'으로 바뀐 경우도 여럿 있다.)

변방에서 변화는 시작된다했던가...
박달동은 안양의 변방...원래 시흥군에 속한 변두리 시골마을, 박달리였다. 일제는 1930년대 제국주의 대륙침략을 노골화하며 병참기지화의 첨병으로 이 넓은 부지에 탄약고를 세웠고 대대로 농사를 짓던 사람들은 밀려나고 해방이후로도 이 지역은 국방부 차지로 부대와 탄약고가 유지됐고 최근에는 정부사령부가 부지를 넓히며 들어와 있다. 개발은 제한 되고 있다. 정부사령부가 들어올때 주민들의 반대시위가 있었다.국방부는 타협책으로 이곳 주민들의 숙원인 중학교를 군부지옆에 짓게 토지 일부를 내 주었다.
아들은 덕분에 집에서 가까운 이 학교를 다녔다. 학부모로 이 학교 이규철 교장선생님도 알게 되었고 그 인연은 아들 졸업 후에도 계속 이어오고 있다.
참교육이 점점 아득해지는 이 시절에 이 학교가 주목을 받고 있다.어제 한겨레신문에 이 학교 사례가 크게 보도 되었다.
(댓글 참고)
지역주민+학부모들과 수년째 여러 모임을 이어가며 협동조합을 구상중이시다. 어제 북끌림(독서 모임)이 밤늦게까지 교장실에서 7명의 학부모, 지역주민, 교장샘이 모여 진행했다. 그림책 두권을 읽고 여러 이야기 꽃이 피었다. 참 고마운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