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동민]안양 망해암 석조여래입상 경기도문화재(제383호) 지정

[중부일보 기고글]경기도 문화재로 지정된 망해암 석조여래입상의 아름다움
임동민 안양시청 학예연구사
극락정토(極樂淨土) 안양(安養)에는 안양사지, 삼막사를 비롯하여 많은 불교 문화유산이 있다. 그 가운데 학계에만 알려져 있던 숨은 보석이 최근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는 성과가 있었다.
안양 대림대사거리에서 굽이진 도로를 따라 산을 오르면, 원효 때 창건되어 혜경궁 홍씨가 중건하였다고 전하는 망해암이 나타난다. 경내의 높은 곳에 자리 잡은 용화전 내부에는 돌로 만든 고졸(古拙)한 불상이 서있다. 망해암 석조여래입상이다.
망해암 석조여래입상은 불상의 윗부분만 법당의 마루 위에 노출되어 있고, 앞에는 불단이 놓여있으며, 머리 부분에는 보개(寶蓋)를 씌웠다. 보개 하단부의 성화(成化) 15년 명문을 통해, 조선 성종 10년(1479)이라는 조성연대가 확인되었다. 하지만 불상의 무릎 아래는 법당 마루 아래에 묻혔고, 불상에 전체적으로 검은색과 흰색 안료가 칠해져 있어 온전한 모습을 확인하기 어려웠다.
이에 안양시에서는 2017년 보존처리공사를 통해 불상에 도포된 안료를 제거하였다. 안료를 제거하자, 눈꺼풀, 볼, 턱 등의 양감이 더욱 두드러지게 보였고, 석조여래입상 본연의 예스러운 아름다움이 나타났다.
이제 남은 것은 마루 아래에 묻힌 불상 하부였다. 안양시에서는 2021년 초부터 몇 차례 전문가 현지조사를 통해 불상 하부 조사의 필요성을 파악하였고, 망해암의 협조를 얻어 마루 일부를 제거하고 석조여래입상 하부를 조사하였다. 그 결과, 마루 아래에서 불상의 두 발과 추정 연화문이 새겨져 있는 대좌 일부를 확인하였다. 마루 아래의 깊이가 약 1m이고, 마루 위 불상의 높이가 약 2.4m이므로, 석조여래입상의 총 높이는 약 3.4m로 추정된다.
이러한 조사 결과, 석조여래입상은 신체비례, 수인, 옷주름 등의 특징을 근거로 하여 고려 전기 미륵불로 파악되었고, 조선 성종대에 보개를 결합한 사례로 추정되었다. 이에 안양시와 망해암에서는 경기도 유형문화재 지정신청을 하였고, 2022년 5월 27일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신규 지정되었다. 망해암 석조여래입상은 고려 전기 경기~충청지역 대형 석조여래입상 계통에 속하는 동시에, 정확한 조성 연대를 알 수 있는 보개를 갖추어 미술사적, 역사적 가치가 크다는 평가를 받았다.
본래 망해암 석조여래입상은 해발 210m 산비탈에서 남서쪽을 향해 있던 높이 3.4m의 거대한 불상이었다. 바다에서 석조여래입상을 볼 수 있는 시인거리(視認距離)는 약 60km 이상이므로, 15~20km 떨어진 황해 바다를 오가는 배들에서는 먼 발치에서나마 석조여래입상을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사찰 전승에 조선 세종대 조운선이 난파 위기에서 망해암 스님의 도움으로 살아났는데, 나중에 선원들이 망해암을 찾아오니 스님과 흡사한 불상만이 모셔져 있었다고 전하기도 한다. 지금도 날씨 좋은 날에는 용화전에서 부처님의 시선으로 멀리 황해 바다와 속세의 풍경을 즐길 수 있다. 남서쪽을 향해 탁 트인 망해암의 전망은 일몰 명소로도 유명하여, 안양9경 중 제4경으로 지정되어 있기도 하다. 이번 경기도 유형문화재 지정을 통해, 바다를 바라보며 천여 년 동안 극락정토 안양을 수호하였던 망해암 석조여래입상의 의미가 더욱 널리 알려지기를 기원한다.
[유튜브]경기도 문화유산을 찾아서2022 13 안양 망해암 석조여래입상 편
2022. 6. 27.
영상보기 https://youtu.be/CGOuBZFka50?si=n0MK98isu1_P1mXQ
경기도 문화유산을 찾아서
오늘은 안양의 망해암 석조여래입상을 찾아갑니다
안양시의 유일한 석불 입상인 망해암 석조여래입상
미술사적 가치가 높아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는데요
여기 석조여래입상에는 유명한 설화가 있다고 합니다
망해암 석조여래입상에는 유명한 설화가 있다고 합니다.
(인터뷰, 자막)
조선 세종 때에 한양으로 향하던 조운선이 풍랑을 만나 위기에 빠졌는데
어디선가 홀연히 나타난 스님 한 분이 뱃길을 잘 인도하여 목적지에 잘 도착하였다고 합니다. 선원들은 고마운 마음에 스님의 거처를 물었고 망해암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답니다
그 후 망해암을 찾았지만 스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용모가 비슷한 불상이 법당 안에 모셔져 있다고 전해옵니다
(자막)
망해암 석조여래입상(경기도 유형문화재 제383호)
경기도 안양시 망해암 용화전 내에 위치한 고려시대 불상




[참고논문]安養 望海庵 石造如來立像 硏究 - 銘文과 樣式의 編年 不一致를 中心으로
A Study on the Stone Standing Buddha of Manghaeam Hermitage, Anyang: Focused on the Discrepancy between the Inscribed Date and Style
https://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10960148
저자정보 黃伊淵 (한국학중앙연구원)
저널정보 한국문화사학회
문화사학 文化史學 第56號 KCI등재
발행연도 2021.12
경기도 안양시에는 고려시대 이래 다수의 사찰이 건립되었고 현존하는 불교문화재의 수도 적지 않다. 그 중 관악산에 인접한 삼성산 망해암에는 높이 약 3.4m의 석조여래입상이 있다. 하반신 일부가 전각의 마룻바닥 아래에 감추어져 있던 이 상의 보개 하단에는 “成化十五年四月日造成”이라는 명문이 있어 조선 성종 10년(1479)에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근래 불상의 회칠을 벗겨내는 보존처리작업을 실행한 결과 기존에 알려져 있던 것과 판이한 조성 당시의 상호가 드러났다. 추가적인 조사를 위해 마룻바닥을 탈거한 결과 연화문이 시문된 대좌까지 완전하게 남아 있는 여래입상임을 알게 되었다.
망해암 석조여래입상의 상호와 착의법, 수인 등은 고려전기의 석불에 보이는 양식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 즉 양감있는 상호 표현과 양 어깨에서 외반하는 U자 형태의 대의 주름, 왼손의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오른손 옷자락을 쥐듯 손가락을 구부리고 있는 수인은 고려전기에 중점적으로 조성되는 특징이다. 이는 특히 고려전기에 새롭게 보이는 보살입상에서도 간취되는데, 신양식의 고려전기 보살입상이 미륵보살로 인식된다는 점에서 역으로 망해암 석조여래입상 또한 미륵불로 조성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망해암 보개에 음각된 명문이 가리키는 조선 성종대의 불상과 망해암 상은 양식적으로 매우 이질적이다. 조선전기의 석불입상에 보이는 보개는 그 형태나 착용 방식에 있어 망해암 상과 매우 유사하나, 상호의 표현이나 신체 비례, 수인과 옷주름의 조각 등에 있어서는 단순히 제작기술의 우열을 넘어서는 차이를 보인다. 한편 망해암 상의 양식적 편년에 해당하는 고려전기에는 석불이 보개를 착용할 경우 불정과 맞닿는 보개 하단이 연화문 등으로 장식되었다. 이와 같은 표현은 통일신라대의 석조미술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따라서 망해암 석조여래입상은 고려전기에 제작된 후, 1479년에 현재의 보개가 씌워졌을 것으로 보인다. 추후 망해암 석조여래입상에 대한 정밀조사가 진행된다면 추가적인 양식 및 편년상의 특징에 더하여 존상과 관련된 내용도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