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사진기록/골목풍경

[20260315]친일 민족반역자 김창룡 묘 안양에 있었다

안양똑딱이 2026. 3. 15. 22:38

 

2026.03.14/ 도시기록 #안양 #김창룡 #안양유원지/ 항일독립운동가 탄압에 앞장섰던 친일 인물 김창룡 묘소가 있던곳(석수동 산 30-1번지)을 찾아서. 무덤이 안양사 입구에 있었다고 함. 정확한 위치 수소문중. 사진 등 자료 찾는중


민족연구소에 게시된 기록(월간 말 기자와 독립기자로 활동하며 안티조선 전문기자, 탐사보도 전문기자라는 애칭을 얻었던 정지환 기자(현 시민의신문 취재부장)가 시민의신문 465호부터 인기리에 연재해왔던 [정지환의 취재파일] 을 보니 “안양사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난 작은 쇠다리를 건너세요. 그 다리를 건넌 뒤 오솔길을 따라서 오르다가 다시 철문 하나를 지나면 묘지 터가 보일 겁니다. 그런데 이미 이장을 해서 지금은 아무 것도 없을 텐데…."라 쓰여져 있다.


김창룡은 일제강점기 만주에서 일본 관동군 헌병으로 근무하며 항일독립운동세력을 색출하고, 고문하고, 백범 김구선생 암살의 배후인물로 해방후에는 이승만 오른팔이자 초대 육군 특무부대장이었다.
그는 1956년 1월30일 출근길에 총에 맞아 사망후 2월3일 최초의 국군장으로 장례후 안양유원지 삼성산 자락(현 안양사 입구)에 묻혔다. 기록을 보면 그의 묘역은 문무양반의 석물이 열립해 있고 이승만 대통령이 직접 쓴 비문을 세우는 등 거대했다고 한다. 김창륭 묘는 국방부에 의해 1998년 2월13일 대전국립묘지 장군묘역으로 슬그머니 이장된다. 

 

원래 안양 묘지에는 대표적인 친일 사학자인 이병도가 비명을 지은 묘비가 세워져 있었다.
세월이 흐른 후 이 묘비가 사위가 소유하고 있는 승마장 마굿간에 버려져 있는 것을 시민의 신문 정지환 취재부장이 확인했다.
묘비는 여러 조각으로 쪼개진 채 야생동물의 배설물과 흙덩이와 뒤엉킨 채 쓰러져 있었다.
후손들이 버린 것은 이병도일까? 아니면 욕된 인생을 산 조상일까?

 

이 묘비를 읽어 보자.
"조국 치안의 중책을 띠고 반역분자 적발에 귀재의 영명을 날리던 고 육군특무부대장 김창룡 중장은 4289년(1956년) 1월 30일 출근 도중에 돌연 괴한의 저격을 받아 불행히도 순직했다. 이 참변을 듣고 뉘 아니 놀래고 어 하랴. 아! 이런 변고가 있을까? 나라의 큰 손실이구나… 아~ 그는 죽었으나 그 흘린 피는 전투에서 흘린 그 이상의 고귀한 피였고, 그 혼은 기리 호국의 신이 될 것이다" - 문학박사 이병도 지음


관동군 헌병으로 독립군에게 총질을 하던 친일파와 민족의 혼을 파먹던 총독부 사학의 거두 간의 찐한 우정이 느껴진다.
그래서 초록은 동색이라고 했던가?

 

친일파는 살아있다: 역사학자 이병도와 특무대장 김창룡 이야기

By 민족문제연구소 - 2005 8 10 4788

https://www.minjok.or.kr/archives/645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