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1]안양예술공원에 있는 문화재 석재 채취 흔적

2026.02.25/ #도시기록 #안양 #조선시대 #석재 #돌 채석/ 안양예술공원 마애종 뒷편 거북바위 아래 있는 바위 덩어리로 돌을 쪼개 석재를 채석하려던 구멍 흔적이 남아있다.
우리 조상들은 청동기 고인돌 시대부터 돌을 잘라내는 기술을 갖고 있었다. 방법은 잘라야 단한 나무를 구멍에 박고 물을 부으면 나무가 팽창하면서 그 단단한 돌을 쪼갠후 사찰의 탑을 비롯 건물이나 다리 건설 등의 자재로 사용했다 .
여기뿐 아니라 낙원마을 뒤 산자락(안양2동 예술공원 118번길 21-27 뒤)에 오르면 커다란 바위들이 있는데 일부 바위는 돌을 잘라낸 흔적이 있고 일부 바위는 돌을 잘라내기 위해 구멍을 뚫어놓은 것들도 있다. 과거 여기서 잘라낸 석재들은 인근의 만안교를 놓는데 또는 중초사와 안양사의 당간지주, 석탑 등을 만들때 쓰였졌던 것으로 보인다. 이 현장은 안양2동 어르신들의 입을 통해 전해지던 곳인데 2017년 무렵 김귀연 전 안양2동주민자치위원장 안내로 찾아가 사진으로 기록을 남겼다. 참고로 김귀연 전 위원장은 안양 토박이로(부친은 시흥군 의용소방대 근무) '옛사진으로보는안양의재발견(2009.11), '내고장안양2동의흐름'(2014.12) 등 안양2동의 옛사진들을 수집해 2차례나 자료집을 발간했고 대부도에 이주해 살다가 사망했다. 일부 주민들 말로는 만안교 석재와 돌 재질이 같다고 하는데 자세한 것은 과학적으로 분석을 하면 사실 관계를 알수 있지 않을까 싶다.
기록을 보면 만안교는 1795년(정조 19년) 당시 경기관찰사(京畿觀察使) 서유방이 왕명을 받들어 전국의 석수쟁이들을 불러 모아 단 3개월의 공역 끝에 같은해인 1795년 9월에 길이 15장(약 31.2m), 폭 4장(약 8m), 높이 3장(약 6m)에 7개의 갑문을 설치하고 그 위에 화강암 판석과 장대석을 깐 돌다리다. 만안교가 빨리 완공을 보게된 것은 경기도관찰사를 위시하여 병마수군절도사, 수원, 개성, 강화 등의 유수(留守)까지 동원될 만큼 큰 사업이었지만 안양천 주변과 삼성산 등에 교량 건축용 좋은 석재들이 많았기 때문인데 석재들을 어디서 채취했는지는 기록으로, 또 현장이 어디인지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은채 사실 관심 갖는 이들도 없었다.
[20170513]안양, 조선시대 만안교.사찰 등 석재 채취 현장?
안양똑딱이 2017. 5. 19. 07: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