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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20]한국전쟁사, 안양 상공에서의 전투기 공중전

안양똑딱이 2026. 1. 20. 19:12

<F-82  투윈무스탕>

 

바토의 한국전쟁사 블로그에서 발췌

프레이저 중위 회고(안양상공에서 격추된 첫 적기)

2013. 2. 19. 20:13

https://blog.naver.com/steelgun/40181086721

 

6·25전쟁이 발발하자 서울 거주 미국인 긴급 피난을 위해서 미공군 수송기가 서울 근교 김포 비행장에 파견되었다. 이에 미군은 일본에서 수송기를 호위할 호위기를 파견했다. 규우슈의 이다쓰케 기지에 주둔해 있었는데 한국에 긴급히 파견하는 C 47 수송기를 한국 김포까지 장시간 동반 호위 할 만큼 항속 거리가 긴 마땅한 전투기가 F82 빼고는 없었다.

 

그래서 이 독특한 모양의 전투기(F-82  투윈무스탕)가 김포까지 날아왔다가 공중전에 참가하게 된다. 이날 고공은 F80이 초계하고 저공은 F82가 담당하기로 하였다.

 

6·25전쟁에서 최초로 북한 전투기를 격추한 F82의 레이다 조작 담당 조종사 칼 프레이저 중위의 회고.

우리 기()가 교민 철수를 위해서 파견한 수송기 호위를 위해서 김포 비행장 상공을 초계 비행하고 있을 때 낮게 깔린 구름 속에서 북한 전투기 야크 7B기들이 갑자기 나타나더니 찰리 모란과 프레드 라킨스가 조종하는 같은 편대의 다른 F82 G에게 덤벼들었다.

 

그 북한기의 사격 솜씨가 상당히 좋아서 찰리 전투기의 꼬리를 명중시켜 파편을 여러 곳으로 비산시켰다. 내 비행기의 조종사 허드슨은 미끄러지듯 기수를 돌려 도전해온 북한 편대 편대장기의 후미를 물었다. 우리가 자신의 꼬리를 물은 것을 알아 챈 북한 기는 옆의 구름 속으로 도피를 시도했다. 우리에게 다행이었던 것은 우리는 불과 몇 십 미터 뒤에서 추격하고 있었기 때문에 구름 속에서도 적기를 잘 볼 수가 있었다.

 

우리의 첫 발사는 적기의 기체 후미 파고 들어 사방으로 떨어져 나간 조각들이 우리 쪽으로 날아왔다. 적 야크기 조종사는 오른쪽으로 선회하면서 힘든 상승을 시도했다. 우리는 뒤쫓아 가며 적기의 우측 날개의 연료탱크 부분을 조준하고 다시 한 번 기총소사를 가했다. 이 사격으로 연료 탱크에 불이 붙었다. 오른쪽 날개의 후랩과 보조익이 떨어져 나갔다. 보기에도 적기는 더 이상 조종 가능 상태가 아니었다. 적기의 속도가 느려지면서 후미를 따르던 우리 기는 적기를 충돌 일보 직전까지 근접했다,

 

나는 적기 조종사가 후방석을 뒤돌아보며 뒷 조종사에게 뭐라고 고함치는 것을 분명하게 볼 수 있었다. 다 틀렸으니 탈출하라고 했을 것이다. 적기 조종사는 캐노피를 뒤로 밀고 날개 위로 기어 나왔다. 그는 다시 뒤로 기대듯 돌아보며 후방석 조종사에게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후방석 조종사는 너무 겁을 먹었던가 부상했던가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적 조종사는 날개에 선채 낙하산의 고리를 당겼다. 펴진 낙하산은 그를 잡아채듯 기체에서 끌어냈다. 그의 탈출 직후 기체는 뒤집어 지면서 그대로 지상으로 추락했다. 공중전은 불과 300미터 이하 상공에서 벌어졌다.

 

기지로 돌아온 뒤에 편대원 모란이 적기 한기를 격추시킨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후미에 붙은 적기를 따돌렸지만 실속에 빠졌다. 그가 겨우 기체를 바로 잡았을 때 바로 정면에 다른 야크기가 날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는 그대로 방아쇠를 당겨서 그 적기를 격추시켰다.

 

우리 두기만 적기를 격추한 것이 아니었다. 적 야크기를 격추했던 다른 편대기인 F82기가 또 있었다.

 

북한 공군의 액운은 이것으로 끝나지만 않았다. 그날 늦은 오후 피난민들을 태우고 이륙하려고 했던 수송기들을 공습하러 나타났던 8기의 북한 IL-10 공격기들은 출현한 적기를 보고 고공에서 급히 강하한 미 공군 F80슈팅 스타기들에게 4기가 격추당했다.

 

3일간 김포 비행장에서 수행했던 피난 민간인 구조 작전은 한명의 민간인 피해도 없이 완수되었다.

 

개전 초기 북한 조종사를 포로로 잡았다는 한국군 기록은 있지만 그의 운명에 대해서 기술한 것을 보지 못했다. 단지 한국군이 철수하면서 이 조종사를 사살했다는 풍문을 나이 많은 부사관에게 잠깐 들은바 있다.

 

* 회고록이나 수기 등 을 보면 이날 나타난 북한군기를 야크-7B 또는 IL-10기 등 으로 회고 하고있다.

* 야크 7B기 한국 전쟁 3년 동안 유엔군 해공군기에게 격추당했던 공산측 976기의 첫 전투기였다.

 

북한 공군은 개전 일부터 서울 상공에 나타나서 활개를 펴고 시설이나 국군 병력들에게 기총 소사를 가했다. 그들의 큰 수확은 개전 당일 여의도 기지에 [주기駐機]해 있던 한국 공군기 10기에 기총소사를 해서 7기를 파괴시킨 것이다. 한국 공군사는 이들이 L 4 정찰기라고 말하고 있다.

 

*전쟁이 발발하고 단 이틀째 되던 날 이날 북한 공군은 무려 7기나 격추 당했다. 이날 이후 북한군은 그들이 소련으로부터 미그 15기를 공여 받을 때까지 한번도 유엔기에 도전해오지를 않았다.

 

윤응렬 장군이 쓴 자서전상처 투성이의 영광을 보면...이날 공격 이후 며칠동안 격추당한 북한 공군 조종사들 전부가 다찌아라이 소년 비행병 출신이었다. 6.25 초반 격추된 북한 조종사들이 낙하산을 타고 비상 탈출을 했다가 군경에 잡힌 것이 희미하게 옛 기록에 남아 있기는 하지만 이를 약간이나마 자세히 기록하고 있는 것은 윤응렬 장군의 자서전뿐이다.

 

6.27일 흑석동에서 미 F-82에 격추 된 조종사는 평양 사범을 다닌 일본 특간 1기 출신의 강대용이었고, F-80에 격추 된 야크 9 기의 조종사는 함경도 경원 출신의 추격기 대대장 박경옥이었다. 박경옥은 낙하산으로 내려오면서 권총으로 대항하다가 체포되어 사살되었다.

 

격추 된 또 다른 한 명은 윤 장군과 같이 중학교에 다녔고 사는 곳도 가까웠던 이흥부였는데 그의 전투기는 수원 상공에서 미 F-80에게 격추 당했었다. 낙하산으로 탈출하여 포로가 되었을 때 이미 복부에 총을 맞아 치명상을 입은 상태였는데 병원으로 후송해 치료를 받는 도중에 그는 윤 장군을 애절하게 찾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 때 윤 장군은 출격에 나가 있을 때여서 찾아보지를 못했고, 갈증에 허덕이던 그는 사이다 한 모금에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다가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고 한다.

<c-47 수송기>
<F-80  슈팅스타 >
<북한 야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