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17]가르뎅추기경과 한국 가톨릭노동청년회(JOC)

한국 노동사목 50년 발자취
입력일 2008-10-12 15:25:00 수정일 2008-10-12 15:25:00
https://www.catholictimes.org/166856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가 올해를 ‘한국 노동사목 50주년’으로 지정한 것은 한국 가톨릭노동청년회(이하 가노청, J.O.C)를 한국 노동사목의 효시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한국 노동사목의 시작, 가노청의 태동과 과거 활약 등을 돌아본다.
1958년 : 한국 가톨릭 노동청년회는 1958년 1월 서울대학교 병원의 간호사 박명자(마리아)가 이해남(요셉)을 통해 가노청을 접하게 되면서 태동됐다. 이어 서울대학교 병원 간호사 10여명이 모임을 갖기 시작, 가노청 국제본부에서 2개월 동안 지도자 훈련을 받았던 박성종 신부가 지도를 맡았다가 11월 가노청 설립자 벨기에의 카르딘(Joseph Cardijn) 신부가 한국교회를 방문함에 따라 공식적으로 창립됐다.
이후 한국 가노청은 1959년 6월 빈민촌 무료 진료를 시작으로 대외 활동을 전개했고 안양 본당에 처음으로 가노청 팀을 설립했다.
1960년대 : 1960년 7월 전국 조직 본부를 서울 경향신문사에 설치하고 이듬해 서울, 대구, 전주, 대전교구의 남녀 대표들이 모여 제1차 전국 평의회를 개최한다. 또 주교회의에서 평신도 사도직단체로 정식 인준을 받게 되면서 초대 총재로 노기남 주교가 선임됐다.
이들은 1960년 선면 공업 주식회사와 드레스 미싱에 노조를 결성했고, 이어 ‘제지 공업’ 임금 인상 사건 등에도 관여했다. 또 넝마주이들의 의식주 문제와 정서 교육을 위한 교도사업과 노동자를 위한 보리싹 식당 운영, 식모 문제 해결을 위한 여론 조사, 서독 파견 광부들을 위한 활동과 해외 이민 문제에 대한 대책 마련, 윤락 여성 선도 및 근로 재건대 활동 등도 실시했다.
1967년 당시 김수환 주교가 2대 총재로 취임, 1968년 강화도 심도 직물 섬유노조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가노청 회원들이 주축이 돼 노조를 결성하자 회사 측에서 탄압을 가한 것으로 한국 주교단에서는 ‘사회 정의와 노동자의 권리 옹호를 위한 성명서’와 공동 교서 등을 발표, 회사 측에 대처했다.
1970년대 : 가노청은 1970년대에 접어들며 광산 노동자 실태 조사, 여차장 삥땅에 관한 심포지엄, 박신정 사건, 천요셉 산업 재해 사건, 한국 모방 퇴직금 체불사건, 삼립식품 사건 등 노동현장에서 노동 조건 및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해 구체적 활동을 벌였다.
이에 정부와 기업은 가노청을 지속적으로 탄압했는데 특히 1974년 지학순 총재 주교가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강제 연행된 후 가노청 회원들에 대한 정부와 회사의 탄압이 더욱 심해졌다.
하지만 이러한 가운데 가노청은 가톨릭 신자가 아닌 노동자들도 회원으로 받아들여 조직을 확장했고, 각 지역별로 훈련회를 개최해 노동운동에 대한 재교육을 실시한다.
1980년대~90년대 : 1984년 가노청은 ‘가톨릭 노동 사목 연구소’를 창립해 노동 현실에 대한 실태 조사와 노동법 개정연구, 노동 문제에 대한 초보적 권리 자각 활동을 전개했다.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에 참여하고 7,8월 열린 노동자 대투쟁에서는 경제 성장과정에서 묵살됐던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며 노동자들의 자주성을 회복한다.
90년대 들어 가노청은 위기상황을 맞는다. 대학 진학률이 높아지며 노동 청소년과 청년은 크게 감소했고 노동 형태가 유연해지며 노동자 인식 또한 희박해졌다. 이에 가노청은 노동운동 중심에서 생활운동 중심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따라서 1994년 5월, 학원가가 밀집한 노량진에 가톨릭 청소년 상담 센터를 개소했다.
2000년대 : 가노청의 생활운동은 2000년대 들어 더욱 활기를 띈다. 2002년 6월, 회원 확장과 가톨릭 홍보 그리고 쉼터 제공을 목적으로 노량진에 있는 가노청 전국 본부에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찻집을 마련했다. 2005년 가노청은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이어지는 노동 청소년·청년들의 노동형태와 청년층 실업 등에 관심을 갖고 대책 마련에 노력하고 있다.








조셉 가르뎅(Joseph Cardijn, 1882~1967) 추기경
조셉 가르뎅(Joseph Cardijn, 1882~1967) 추기경은 벨기에 출신의 가톨릭 사제로, 가톨릭 노동청년회(JOC, Jeunesse Ouvrière Chrétienne)의 창설자이자 현대 가톨릭 평신도 사도직 운동의 선구자이다.
카르댕은 교황 회칙이 반포되기 약 10년 전인 1882년에 태어났다. 그는 노동자들의 비인간적인 상황을 목격하고 착취당하는 노동자들을 위해서 일할 생각을 하고 사제가 되어 청년 노동자들의 조직에 관심을 갖는다. 그는 1915년부터 노동청년 조직을 브뤼셀 전역에 확대하여 마침내 1920년 "청년노동조합"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당시 벨기에 교회의 청년연합회는 급속히 발전하고 있는 청년노동조합을 청년연합회에 소속시키고자 하였다. 그러나 카르댕은 교육수준이 높고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주도하고 있는 청년연합회 안에서는 청년노동조합의 노동청년들이 자율성을 잃을 수 있다고 판단하여 이에 반대하였다. 결국 교회의 지도자들은 청년노동조합이 교회의 일치를 깨뜨린다고는 이유로 청년노동조합을 해산하도록 명령하였다.
카르댕은 교황 비오 11세를 만나 청년노동조합의 해산 문제를 제출하여 교황의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는다. 교황 비오 11세는 그에게 “이제야 마침내 대중에 관해 말을 해주는 사람을 만났다” (가톨릭일꾼 http://www.catholicworker.kr)고 반가워하며 카르딘의 노동청년운동을 허락해 주었다. 그리고 1925년 가톨릭노동청년회라고 이름을 바꾸고 200명의 대의원이 모여 창립 평의회를 열어 정식 발족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카르댕이 처음 생각했던 가톨릭노동청년회가 청년 노동조합이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가톨릭노동청년회는 신심단체가 아니라 다른 노동조합 활동과 같이 계급성과 정치성을 갖는 운동이다. 카르댕은 이렇게 말한다.
“반(反)사회주의와 반공주의로는 노동자 계급을 구하고 교회에서 멀어진 민중을 다시 교회로 이끄는 데 충분치 못하다. 마르크스주의 안에는 하나의 진리의 핵이 엄청난 폭발력을 지니고 있다. 이 점을 사람들은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있다. 즉 마르크스는 노동자 계급에 세계를 구원할 임무, 메시아적 사명을 부여했다는 점이다. 이것이 마르크스주의의 강점이다. 공산주의를 논하는 교황의 회칙은 문제를 부정적인 면에서만 다루고 있다. 대부분의 내용이 공산주의를 말살하는 방법만 찾고 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주신 노동자 계급의 사명에 관해서는 아무 말이 없다.” (가톨릭일꾼 http://www.catholicworker.kr)
카르댕은 마르크스의 사회분석 가운데 노동자 계급이라는 사회적 계급성에 대해서 인정한다. 뿐만 아니라 그는 노동자 계급에 세계를 구원할 임무, 메시아적 사명을 부여했다고 보는 것이다. 이는 정치성과 노동자들을 구원해야 한다는 평신도 사도로서의 활동이 합해진 것입니다. 그는 또 지오세 활동의 계급성과 정치적 활동을 비판 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소박한 노동자 한 사람을 선봉투사요, 동료 노동자들을 구할 수 있는 사도로 삼을 수 있다는 사실을 단순한 마음으로 믿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작고 겸손한 사람들에게는 당신을 드러내시고 크고 오만한 사람들에게는 당신을 감추셨으니 감사하다고 예수님은 아버지 하느님께 말씀드렸습니다. 또 역사를 보십시오. 작은 이들이 교회를 키워왔다는 사실을 거듭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작은 이들의 부요함을 알아야 하며, 그들의 가능성을 믿어야 합니다.” (가톨릭일꾼 http://www.catholicworker.kr)
사실 지오세 회원들은, 마치 사제가 매일 미사를 봉헌하듯, 동료 노동자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작업대를 제대로 삼아 자신을 봉헌하는 활동을 하는 사도들이다.
[한국 가톨릭노동청년회 현주소] “부활하는 가노청 … 청년 노동자 당신을 기다립니다”
입력일 2011-09-20 04:41:00 수정일 2011-09-20 04:41:00 발행일 2011-09-25 제 2763호 14면
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201109200173142
‘노동’이라는 단어에는 1970~80년대 치열했던 민주화 운동의 열기가 묻어있다. 당시 이 땅에 새 역사를 쓴 주인공들은 다름 아닌 노동 청년들이었다.
시대가 변화하면서 사람들은 ‘청년 노동자’를 잃어버렸다고 말한다. 청년 노동자 대신 ‘대학생’이, ‘취업준비생’이, ‘고시생’이, 이도 저도 아니면 ‘아르바이트생’이 가득한 세상이다. 하지만 ‘청년 노동자’는 여전히 존재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바로 취업전선에 뛰어드는 청년들뿐만 아니라, ‘88세대’로 분류되는 ‘노동자’도 아니고 ‘학생’도 아닌 경계인들, 그리고 직장인들을 비롯해서 여전히 이 세상에는 변형된 형태의 수많은 ‘청년 노동자’들이 살아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아시아에서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점차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는 한국가톨릭노동청년회의 행보가 눈에 띈다.
최근에는 국제가톨릭노동청년회 조셉 마리아(Josep Maria Romaguera Bach) 신부가 9월 22~28일 필리핀에서 열리는 국제가톨릭노동청년회 아시아국제회의에 앞서 한국을 찾아 한국가노청의 현실을 둘러보고 갔다. 조셉 마리아 신부를 만나 가노청운동의 의미에 대해 들어보고, 동시에 한국가톨릭노동청년회의 현 주소도 점검해봤다.
‘가톨릭노동청년회(JOC·가노청)’하면 떠오르는 것이 1970~80년대 치열했던 청년 노동운동의 역사다. 가노청이 설립된 1958년으로부터 약 반세기가 지난 지금, 이 땅의 노동현실은 참 많이도 변했다. 군부 독재정권 하에서 민주노조운동에 동참하면서 복음화 방식에 대한 의견차로 갈등을 겪기도 했지만, 한국사회의 노동 현실을 개선하고 노동 영성의 불꽃을 뜨겁게 타오르게 했던 것만큼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1990년대를 거치며 ‘청년 노동자’를 잃어버렸던 가노청이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 변화된 시대와 함께 정체성과 방법론에 대한 고민으로 잠시 주춤거렸던 가톨릭노동청년운동이 다시 불붙고 있는 조짐이 엿보인다. 가톨릭노동청년회 서울지부 인터넷 동호회 ‘까르딘 청년회(http://club.cyworld.com/ycwseoul)’가입자 수가 150명에 육박하고 있고, 실제로 왕성한 오프라인 활동을 펼치고 있는 회원도 50~60명에 달한다. 2002년 서울 노량진에 작은 센터를 열고, 다시 가노청의 명맥을 잇고자 모였던 회원 수 10여 명에 비한다면 9년 사이 열 배가 넘는 성장을 한 셈이다.
노동운동에 앞장서오던 가노청 전국연합회가 해체된 것은 1999년의 춘계 주교회의의 결정사항이다. 각 교구별 가노청운동의 활성화를 위해서였다. 그러나 기대와는 반대로 이후 가노청 규모는 축소되기 시작했고 2004년 경에는 가노청 전국 모임이 이뤄지기 어려운 상황에 봉착했다. 2006년 말에 광주대교구 가노청이, 2008년에는 인천교구와 마산교구 가노청이 사라졌다.
가노청의 명맥을 가까스로 유지한 것은 서울대교구 가노청이었다. 2002년에 노량진 본부 건물에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이름으로 카페를 마련해 청년 회원들을 모집했다. ‘까르딘 청년회’라는 애칭도 붙여 친근감을 더했다.
2000년대 들어서 가노청운동은 ‘노동’ 중심에서 ‘신앙’ 중심으로 옮겨왔다. 팀 회합 중심으로 가노청운동을 내면화해, 가노청 영성의 불씨를 되살리기 위해 애쓰고 있다. ‘관찰·판단·실천’을 통해 개인의 변화를 꾀하고, 나아가 공동체 그리고 사회의 변화를 꾀한다는 가노청 기본 운동방식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가노청의 행보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 아무리 시대가 변화했지만, 기본적으로 가노청운동은 노동 현장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현 산업 구조와 사회 현실로 비춰봤을 때, 현재 가노청운동을 ‘관찰·판단·실천’을 통한 복음화 중심의 회합과 미사·피정 중심으로 진행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타당하다는 의견도 강한 설득력을 얻고 있다. 가노청의 주인인 청년들의 ‘공감’ 없이는 가노청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새로운’ 가노청운동은 청년들의 공감을 얻고, 다시 가노청 영성을 세우는 데에 성공을 거두고 있다. 2006년 대구대교구 가노청이 다시 조직됐고, 인천교구 소속 청년들이 가노청 활동을 위해 서울대교구 가노청 회합을 찾아올 정도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서울 가노청 이정선(마리아그라시아) 회장은 “가노청 회합을 통해 복음이 주는 기쁨과 그를 통해 사회 속에 존재하는 자신의 의미에 대해서도 찾게 되는 계기가 됐다고 고백해오는 회원들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면서 “현재 우리 청년들이 처한 현실을 인식하고, 복음적인 시각에서 이 현실을 개선해나가고자 하는 청년들의 움직임이 점점 활기를 띠고 있다”고 말했다. 가노청 운동이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20대에서부터 35세 직장인까지 다양한 연령층 회원들의 공감을 얻으며 점차 그 규모를 확장하고 있는 까닭은, 변화하는 노동 현실에 따라 변화하는 청년 노동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변신을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가톨릭신문 임양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