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영]안양시사 출간과 그리고 다음 기록을 위하여(2025.12.22)

기록의 무게를 감당한 이들에게 드리는 감사 헌사 글입니다.
— 「안양시사」 출간 완간을 바라보며, 그리고 다음 기록을 위하여
한 도시의 역사는 저절로 남겨지지 않는다.
역사는 기억하려는 의지가 있을 때에만 기록으로 남고, 기록될 때에만 다음 세대의 기준이 된다. 사라짐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오늘의 책임을 내일의 기억으로 남기겠다는 결단이 없으면 도시는 흔적 없이 소모되고 만다. 그래야 역사가 무섭게 느낄수있어야 현실를 무겁게 받아드린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4년간 이어진
「안양시사」 편찬의 여정은 단순한 행정 사업이 아니라, 안양이라는 도시가 스스로의 정체성과 존엄을 지켜내기 위해 내린 집단적 선택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 장대한 기록의 완주가 가능하도록 행정적·정신적 중심을 잡아준 안양시 최대호시장님, 시사가 단기 성과물이 아니라 세대를 넘어 남을 공공의 유산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흔들림 없이 기록의 길을 선택한 판단에 먼저 깊은 경의를 표한다.
기록은 비용이 아니라 투자이며, 행정의 부속물이 아니라 도시의 기준이라는 인식을 실천으로 증명한 결정체이었다.
아울러 방대한 사료의 수집과 검증, 집필과 편찬이라는 고된 과정을 묵묵히 감당해 온
안양시의회 음경택시위원.
안양몌술재단 최우규이사장.
안양문화원 김용곤원장
안양시사편찬위원회 집행부
김지석위원,
김현미과장.
연구진과 실무자
들의 노고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기록의 한 줄, 문장의 한 단락마다 축적된 시간과 판단, 절제와 인내의 무게를 알기에, 이번 완간은 단순한 책의 출간이 아니라 도시가 스스로를 정직하게 마주한 결과라 말할 수 있다.
백범 김구 선생은 “내가 원하는 것은 오직 한없이 높은 문화의 힘”이라 말씀하셨다. 강한 군대나 풍요로운 경제보다 먼저, 기록하고 기억하는 문화의 힘이 공동체와 국가를 지탱하는 근본이라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안양시사」는 행정 성과를 넘어, 안양이 문화적 자존을 선택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기록을 통해 공동체의 기억을 세우고, 기억을 통해 민주주의의 토대를 다져가는 과정 자체가 곧 문화의 힘이다.
그러나 기록은 언제나 책 이전에 사람에게서 시작된다.
안양지역원로 간담회 사진 속 한 테이블에 둘러앉은 인물들은 그 사실을 웅변한다. 임정조 장로, 정연현 장로, 이환기 선배, 그리고 동안구청장을 역임한 박원용 선배. 본인 문화영 이분.들은 안양의 ‘유명 인사’이기 이전에, 왜정기와 해방, 전쟁과 분단, 산업화와 도시화의 격랑을 몸으로 통과해 체험한 깊이 숨겨진 몰랐던 사실도 밝혔던 좌담회이였다.
온 보통 시민의 전형이다. 그분들의 삶은 안양이라는 도시가 어떤 선택을 하며 견뎌왔는가를 증언하는 살아 있는 기록의 자리였다.
이들의 삶에는 친일 청산의 미완, 이념의 갈림길에서의 침묵과 결단, 전쟁 이후 생존의 고단함, 그리고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신앙과 윤리가 겹겹이 쌓여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삶의 결은 문헌으로 옮겨지지 않는 순간, 쉽게 사라지고 만다. 기록되지 않은 기억은 개인의 추억으로 머물다 결국 소멸하고, 도시는 맥락을 잃는다.
대표적으로 추후
안양역전앞 이야기가 될것이다.
안양역과 안양1번가, 관양동과 안양동은 단순한 지명이 아니다. 수많은 이들이 처음 안양에 발을 디딘 관문이었고, 생계를 시작하고 관계를 맺고 신앙과 노동을 이어간 삶의 무대였다. 철로길 넘어 구시장과 골목, 안얌역전 앞 평생을 찌든 연탄가루가 날리던 개천가.공장에서 종이 찌거기 개천가의 땔감(?). 소시민들의 삶을 공권력으로 밀어버린 아픔.교회와 학교, 복지관과 작은 모임들이 도시의 혈관처럼 얽혀 안양의 생활사를 이루었다. 이러한 공간과 삶의 기억이 기록될 때, 시사는 비로소 행정의 연대기를 넘어 공동체의 역사로 확장된다.
특히 이 지점에서 반드시 언급되어야 할 이름이 있다.
*전진상(前進賞)*이다.
무섭게 온난화 여름 안양박물관
안양도시기록연구소 최병렬소장께서
오랫동안 간직했던
영사기 기증소식이다.
안양시민들 대다수가 모르고 산다.
1985년 12월 2일, 장래동 천주교 복지회관에서 창립된 전진상이다.
안양에서 여성의 지위 향상과 지역사회 봉사를 목적으로 한 최초의 조직적 여성운동체였다. 이는 단순한 친목이나 자선 단체가 아니라, 가부장적 사회 구조 속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공적 영역으로 나아간 분명한 역사적 전환점이었다.
전진상은 제도 이전에 삶을 보았고, 이념 이전에 사람을 품었다. 복지와 돌봄, 교육과 연대를 통해 여성의 역할을 새롭게 정의했으며, 신앙에 뿌리를 둔 봉사를 통해 공동체의 가장 낮은 자리로 먼저 내려갔다.
그 중심에는 오랜 세월 ‘안양 여성계의 어머니’로 불려 온
故 정어진 원장님이 계셨다.
정 원장님의 삶은 세속적 운동가의 그것이 아니라, 신앙에서 비롯된 봉사의 실천이었다.
“봉사는 신앙의 다른 이름”이라는 태도는 전진상의 정체성이 되었고, 안양 여성운동의 윤리적 기준이 되었다.
전진상에서 시작된 봉사의 맥은 단절되지 않았다. 윤옥규 회장, 심재룡회장, 서인자 원장, 조인숙 원장(중화한방병원),
최윤희회장,강은자회장.정규애실장.군포제일병원(서울병원)등 수많은 여성
지도자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그 정신을 이어왔다. 이 이름들은 기록의 전면에 자주 등장하지는 않지만, 오늘의 안양 시민사회가 서 있는 보이지 않는 기둥들이다. 최근 안양자원봉사회 안양시민대상 수상은, 개인의 영예를 넘어 전진상으로부터 이어져 온 40년 봉사의 역사가 공동체적으로 인정받은 상징적 장면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신앙·여성·봉사의 생활사는 이번 「안양시사」 전반에 충분히 스며들지 못했다. 이는 누락이라기보다, 다음 기록이 감당해야 할 과제로 남겨진 여백일 것이다. 구술로 이어져 온 기억들이 기록으로 전환되지 못하는 순간, 역사는 단순화되고 공직자,광역.시위원 역사를 무서워하지 않으며 공동체의 윤리는 희미해진다.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결국 사라진다. 그리고 역사 인식이 흐려질수록 공동체의 정체성과 민주주의의 토대 또한 위태로워진다. 그렇기에 이번 「안양시사」 완간은 끝이 아니라 출발점이다.
다음 시사 편찬에서는 행정과 제도의 기록을 넘어, 원로들의 증언과 생활사, 신앙과 봉사의 역사, 여성과 시민의 연대가 보다 투명하고 용기 있게 기록되기를 기대한다.
지난 4년간 방대한 기록의 무게를 감당해 온 안양시사편찬위원회와 모든 관계자들에게 다시 한 번 깊은 감사와 경의를 전한다.
「안양시사」는 서가에 꽂힌 책이 아니라, 안양의 시간을 지켜낸 증언이며 다음 세대에 건네는 책임 있는 유산이다. 이 기록 위에서 안양의 다음 기억이 다시 시작되기를, 그리고 이 책이 다음 기록을 촉발하는 불씨이자 촉매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글쓴이 문화영(안양문화원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