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16]안양 최초 사립 벧엘유치원 안승선원장(서울신문)
[서울신문]
‘가슴으로 출산’ 31년
이재훈 기자
입력 2006-05-29 00:00
수정 2006-05-29 00:00
안양 벧엘 유치원 안승선 원장
지난 5월 26일 오전 찾아간 경기도 안양시 안양동 벧엘유치원. 우당탕퉁탕 뛰어다니는 아이들, 뭐가 불만인지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들로 어수선했다. 이 아이들을 돌보는 사람은 일흔을 바라보는 할머니였다.‘버림받은 아이들의 대모’로 불리는 안승선(69) 원장. 안 원장은 1975년부터 31년 동안 부모에게 버림받은 고아들을 가르쳐 왔다.
안 원장은 고향 수원을 떠나 서울에서 중학교에 다니던 중 6·25전쟁을 만났다. 한강철교가 폭파돼 간신히 쪽배를 얻어타고 수원에 돌아왔지만 집은 이미 폭격으로 산산조각 난 상태였다.2∼3주 동안 걸인 생활을 하고 있는데 한 미군이 거리에서 안 원장을 보고 제주도의 한국보육원에 보내줬다. 나중에 가족들과 다시 만나기까지 1년 반 동안 이곳에서 먹고 배우면서 안 원장은 기초교육에 일생을 바치기로 마음먹었다.
농촌진흥원 공무원으로 일하다 71년 안양동 150평 터에 벧엘유치원을 세웠다.
75년 공식인가를 받으면서 안양 최초의 사립유치원이 됐다. 인가를 받고 얼마 뒤 유아교육법 강의를 위해 안양시 비산동 평화보육원을 찾았다가 정서불안에 시달리는 고아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이때부터 1년에 많게는 10여명의 고아들을 유치원에 데려와 가르쳤다.
애정 결핍이 심한 보육원 아이들은 매사에 부정적이었다. 부모가 있는 아이들을 괴롭혔고 남의 물건에 손을 대기도 했다. 자해를 하는 아이도 있었다. 부모가 있는 아이들보다 훨씬 더 신경을 쓰고 애정 표현을 많이 했지만 좀체 바뀌지 않았다.
설상가상 왜 고아들을 데려 오느냐는 학부모들의 반발이 이어졌다.“사랑이 모자라서 그렇다. 저 아이들을 내버려 두면 평생 여러분 아이들과 동시대를 살며 사회악으로 자랄지도 모른다. 함께 보살펴야 한다고 무던히도 학부모들을 설득했죠. 결국 학부모들이 보육원 아이들을 식사에 초대하고 옷을 사주며 애정을 표현하는 적극적인 지원자가 되더군요.”
96년엔 사재와 빌린 돈 4억여원을 투자해 300평 규모로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다시 지었다. 그때 진 빚의 이자를 갚는 게 지금도 벅차다.31년 동안 200여명의 고아들이 그의 손을 거쳐갔다. 평화보육원을 찾아가면 아이들 수십명이 우르르 몰려와 재잘재잘 고민을 털어놓는다.“저를 거쳐간 보육원 아이들은 다들 착하게 성장했어요. 어렸을 때 공동체에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교육을 받는 게 그만큼 중요하단 뜻이지요.”
많게는 30대 후반이 된 ‘아이들’이 가끔 편지를 보내온다. 대개 “자식을 낳아보니 그때 원장님의 사랑이 더욱 절실하게 느껴진다.”는 내용들이다.“보육원 아이들은 과거가 부끄러워 그런지 직접 찾아오는 경우는 드뭅니다. 하지만 어딘가에서 훌륭한 사람이 돼 살고 있다는 걸 믿기 때문에 조금도 섭섭하지 않습니다.”
글 사진 안양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2006-05-29 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