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택]안양 박달동 더푼물 주막집의 추억(2025.08.11)
안양 박달동 더푼물 주막집의 추억
주막거리에는 주막이 있어야 하는데...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모르겠고 하여간 주막이라기보다는 구멍가게 같은 가게가 있었는데 그 주인이 문산댁이었다.
가게의 벽 쪽 바닥에 항아리가 묻혀있었고 그 항아리에는 더푼물 술도가에서 만들어 내려보낸 막걸리가 들어 있었는데 아버지를 비롯한 술꾼들이 열린 가겟문 앞에 놓인 긴 의자에 앉아 한잔씩 마시고 고린내 나는 곤단걀을 하나씩 깨먹으며 퇴퇴 병아리 털을 뱉고 일어나 나가면 행주로 대충 훔치고 그 행주를 빤 개숫물을 먼지가 폴폴 날리는 신작로에 냅다 뿌렸다.
그러면 힘들게 벌 쪽에서 올라온 버스가 다시 뽀얀 먼지를 날리며 지나서 서씨네 집 앞 굵은 플라타나스 나무 밑에 엄마와 함께 몇 사람을 내려주고는 다시 폴폴 먼지 날리며 더푼물 고개를 올라갔다.
벌은 지금의 코카콜라나 노루페인트 자리를 말하는데 그 무렵에는 갈대인지 억새인지가 무성한 벌판이었다. 그 벌 중간에 큰 댁이 있었는데 그 집 뒤로 비가 오면 물이 고여 호수처럼 되었는데 어느 해 자니는 그 곳에서 함지박을 보트처럼 타고 놀았다. 자니의 아버지는 미국 사람이라고 했는데 자니도 영락없이 미국인 같이 생겼었다. 나보다 댓살은 더 먹었는데 내게 형처럼 잘 대해줬었다.
이런 여름 날이면 반백년이나 된 옛일들과 풍경이 마치 어제 일처럼 되살아 나곤 한다.
[안양 박달리 더푼물 출신 임희택 님의 추억과 기억]
글쓴이 임희택님은 안양시 박달동 범고개에서 태어난 1963년생 안양토박이로 안서초, 안양동중(신성중), 신성고, 한양대(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안양시민권리찾기운동본부 대표 등 시민운동가로 활동하고 맑은한울 별칭의 논객으로도 활동했다. 현재는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이며 사회복지사로, 맑고 밝고 온누리를 추구하는 자칭 진정한 보수주의자이다.
시흥신문 【잊혀진 시흥시 옛마을 이름을 찾아서】
기사승인 2025.02.21 11:55:31
더푼물
조선시대에는 광명시 학운동 및 부천 지방에서 안양으로 가는 통로로 서너 가구가 있었는데 도적과 강도 등에 시달려 마을이 없어졌다. 이후 일제 때인 1930년대에 이르러 안양시 박달동에 군용지를 개설하면서 박달동 동수암 출신의 광주 이씨와 파주 염씨 등이 이주하여 취락을 형성, 새로 생긴 마을이라 하여 ‘신촌(新村)’으로 불렀다.
또한, 마을 앞쪽의 산이 문봉인데 풍수로 보아 마을을 덮어 누르는 형국이라 하여 ‘덮은늘’이라고도 하였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더푼물’이라 부르기도 했다. 이 마을이 재산이 늘면 문봉에 눌려 30년을 못 간다고 하여 ‘30년 동네’라고도 부르며, 더푼물이라 하여 ‘뚜껑 없는 동네’ 등 여러 갈래로 불리기도 했다.
일설에는 이 마을 정미소와 범고개 마루턱 사이에 우물이 하나 있었는데 오가는 우마로 인해 먼지 등이 날아와 항상 우물을 덮었다 하여 ‘더푼물’이라 했다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