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504]1955년 학생들의 가을 소풍과 노란 양은도시락 추억
2025.05.04/ #아카이브 #옛사진 #기록 #안양중학교 #소풍 #since1955/
단기 4288년(1955년) 10월 15일 안양풀(현 안양예술공원)로 가을 소풍에 나섰던 안양중학교 학생들의 식사 시간인듯 노란 양은도시락 뚜껑을 열고 밥들을 먹고 있다. 평소 학교에 갈때 혼합보리밥과 반찬 한가지를 담겨 있던 양은도시락에 소풍 갈때는 어머니가 정성스럽게 만들어주신 김밥이 담겨있던 추억의 노란 양은도시락이다.
1950년대는 한국전쟁으로 인해 농경지가 파괴되고, 식량 생산이 급격히 감소하며 보릿고개 현상이 더욱 심화되었다.
정부는 배급제를 통해 식량을 분배했지만, 절대적으로 부족한 양으로 인해 국민들의 어려움이 지속되었다.
그때는 모두가 가난해 먹고살기가 힘든 시절이라 밥을 굶는 사람들도 많았고, 동냥을 하러 다니는 사람들도 많았다. 다리 밑에서는 거지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까마득히 흘러간 학창 시절을 생각할 때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노란 양은 사각 도시락이다. 그때 학교에서는 너 나 할 것 없이 노란 양은 사각도시락에 점심을 싸왔다.
도시락에는 가난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아왔다. 보리밥에 반찬은 콩자반, 멸치볶음, 노란 단무지, 깻잎 장아찌 중에 한 가지였다. 달랑 김치만 싸 오는 아이들도 있었다.
소심한 아이들은 초라한 반찬을 내보이기 창피해서 도시락 뚜껑을 세워 가리거나 반찬통을 보이지 않게 덮어놓고 먹었다.
비록 보잘것없는 도시락이었지만 간식 이라고는 구경할 수 조차 없이 밥만 바라보는 아이들에겐 그것도 꿀맛이었다. 설거지가 필로 없을 정도로 밥 한 톨 남기지 않고 싹싹 비웠다.
노란 양은 도시락은 약점이 있었다. 아무리 야무지게 반찬통을 신경 써서 간수해도 반찬국물이 흘러나왔다. 특히나 김치 국물은 책보나 가방 안을 흥건히 적시고, 책이나 노트에 빨갛게 스며들기도 했다. 강한 김치냄새는 가방 속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고 배어 있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도시락을 싸 오지 못하는 아이들도 적지 않았다. 4교시 수업이 끝나고 점심시간이 되면 그 아이들은 슬그머니 교실을 빠져나갔다. 어린 마음에도 도시락을 먹는 아이들을 우두커니 바라보는 것은 자신을 더 비참하게 만든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점심시간이 끝나도록 운동장 가를 서성이거나 허기진 배를 물로 채우거나, 어디 구석진 곳에 자리 잡고 쪼그려 앉아 나뭇가지로 땅바닥에 낙서를 하면서 힘든 시간을 보냈다.
언제부터인가 미국에서 원조를 받은 옥수수 가루로 죽을 만들어 제공하거나 빵을 만들어 도시락을 가져오지 못한 아이들에게 점심대용으로 제공되었다. 도톰하고 사각으로 된 노란 옥수수 빵은 꽤나 먹음직스러웠다. 옥수수 빵을 공급받은 아이들은 도시락과 바꾸어 먹기도 했을 정도로 인기였다, 1960년대 중반 한 시기에는 전교생에게 옥수수빵이 제공되기도 했으며 아이들은 이빵을 집에 가져가기도 했다.
노란 양은 사각 도시락은 겨울에도 인기였다. 1950-70년대 학교 교실에서는 겨울철에 갈탄을 주연료로 하는 난로롤 때웠는데 난로위에는 보온을 위해 양은도시락이 차곡차고 쌓이고 보통 2교시가 끝나면 위 아래 도시락들을 바꾸어 다시 쌓기도 했다
요즈음에는 옛 추억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서인지 노란 양은 사각 도시락에 밥과 반찬을 담아 파는 음식점들을 간간이 볼 수 있다.
풍요로운 음식의 홍수 속에서 입에 짝짝 달라붙는 음식과 살면서도 가난하던 어린 시절 부실하기 그지없던 도시락을 그리워하는 것은 도시락 맛이 아니라 사랑과 정성으로 도시락을 싸 주시던 어머니가 그립기 때문이 아닐까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