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옛지도읽기 49

[지도]1940년경 시흥군 서이면 안양리(이용구선생 손그림)

1940년경 시흥군 서이면 안양리 중심가(현 안양 만안구 지역) 약도(자료 발굴; 건축사 최승원 선생님) 안양3동 양짓말에 사시던 이용구 선생께서 손으로 그린 그림지도로 안양포도 재배를 시작한 오끼이 집과 농장, 과거 수암천 물길, 안양역, 미륵당, 주재소와 신사, 변전소와 우체국, 우시장, 양조장 등의 위차가 기록돼 있다. 이 지도를 그린 이용구(李瑢求) 선생은 1926년 10월생으로 안양3동 양지마을에서 태어났다. 선생은 유년시절 동네 서당에서 천자문(千字文)과 동몽선습(童蒙先習)을 배우고 9살 나던 1934년에 안양공립보통학교를 7회로 입학해서 졸업했다. 이후 경기공립상업학교를 다닌 선생은 졸업한 이듬해인 1945년 1월부터 40년간 근속으로 철도청에서 근무한 후 1984년 정년으로 공직생활을 마쳤..

[안양권지도]일제강점기 지도속 안양(양지동과 담내동)

안양초교 27회동창회 블로그에서 최승원님 자료와 댓글 양지마을(원복상) 20.07.24 17:55 첫댓글 그시절 우리집이 보이네요. 양지마을 至字 와 洞字사이 왼편이 우리집 입니다. 현재는 서초등학교 앞이고요. 기능 더보기 양지마을(원복상) 20.07.24 18:31 양지마을에서 지 자가 해방후에는 알지를 쓴것으로 알고 있는데 해방전에는 이를지 자를 셨군요. 일본글씨는 양지마을 담안마을 이라 써 있군요. 기능 더보기 운제(촤승원) 작성자 20.07.25 20:52 하천변 인가요? 기능 더보기 운제(촤승원) 작성자 20.07.25 20:54 @운제(촤승원) 양지 음지로 봅니다. 기능 더보기 스쿨보이(문수길) 20.07.25 06:12 옛날엔 양짓말, 다만마을이라 알고 있었는데~ 기능 더보기 운제(촤승원) ..

[안양권지도]1976년 안양시(현 만안구 지역) 지도

1977년 3월 국립지리원이 발행한 안양의 현 만안구(안양동.호계동.비산동) 1:5000 지도 1974년 6월 항공촬영 1976년 편집 지도 상단 좌측 끝자략이 안양역이다. 역 뒤로는 1960-70년대 현찰을 가장 많이 보유해 삼성 이벙쳘 회장도 돈을 빌리러 갔다는 얘기를 들었던 단사천 회장이 경영하던 한국특수제지 공장(현 안양1동 삼성 레미안 아파트)이 보인다. 당시 이 공장은 광택이 나고 빳빳한 아트제지를 생산하던 곳으로 공장안까지 수송용 철길이 놓여 있었다. 한국툭수제지와 태평방직 공장 사이로는 1940-60년대 안양읍 시절 다운타운이었던 구사장(시대동)이다. 구시장(시대동)은 1968-9년 당시 안양읍내에서 가장 큰 번화가로 안양역에서 인덕원, 과천, 청계, 서울강남(말죽거리) 으로 가는 도로의 ..

[안양권지도]군포안양의왕 산수여지도(박찬응. 2919)

지난해 페이스북에 올려진 지도를 보고 완성되면 제공해 줄것을 요청했던 박찬응 관장의 신 안양권역 산수여지도입니다. 안양사람이 지금은 군포에 살다보니 금정을 중심에 둔 도로망과 산본천과 당정천, 수리산 등의 하천과 산은 물론 실개천, 호수, 사찰 지명까지 군포에 중심을 둔 그림으로 그려졌네요. 수리산과 관악산과 청계산,백운 줄기에 둘러싸인 군포,안양,의왕지역이 하나의 생활권이며 세상의 중심으로 알고 살아온지 반백년이 지났는데 아직 그중심에 서서 그린 변변한 그림지도가 없어서 한번 시도해보았다. 어줍지않게 선조들의 흉내를 내어보았으나 쉬운일이 아니다. 내놓기가 부끄러웠으나 앞으로 수십장 그리다 보면 통하지않을까 하여 졸작이지만 올려놓고 보기로 한다. 제목 글씨와 낙관은 공제 진영근선생이 쓴 것이다. 2019..

[안양권지도]1976년 안양시(현 동안구 지역) 지도

1977년 3월 국립지리원이 발행한 안양의 현 동안구(비산동.호계동.평촌동-평촌) 1:5000 지도 1974년 6월 항공촬영 1976년 편집 지도 상단에 표시된 하천은 청계저수지(현 의왕시 백운호수)에서 발원해 쌍개울(현 안양 중앙초교앞)에서 안양천과 합류하는 학의천으로 직강화된 지금과 달리 그야말로 구비구비 곡선을 그리고 모래사장이 폭넓게 분포돼 있음을 알수 있다. 지도 상단 우측 관양동에는 대한전선 안양공장(현 평촌 스마트스퀘어로 개발)이 자리하고 있는데 지도에서도 크게 보일만큼 면적이 8만여평에 가까운 260323.2m²에 달한다. 대한전선 우측으로는 태평제지, 신생화학, 태신화학 등 자그마한 규모의 공장들과 밤나무단지의 표기도 보인다. 참고로 안양하면 1950-60년대 안양읍내 전역이 포도밭으로 ..

[안양권지도]1910년 당시 시흥군지도(수기)

1910년 당시 시흥군 수기지도 명칭: 시흥군 크기: 55.5*79.2(0.04) 재질: 한지 설명: 개정전 면경계(일점쇄선) 및 면명은 검은색, 개정후 면경계 및 면명은 붉은색임. 출처: 국가기록원 http://theme.archives.go.kr/viewer/common/archWebViewer.do?singleData=Y&archiveEventId=0049287786 시흥군(始興郡)은 1895년부터 1988년까지 지금의 서울특별시 금천구·영등포구·관악구·동작구·구로구와 경기도 광명시·안양시 일부를 관할하였던 경기도의 행정구역으로 1914년 일제가 행정구역 통폐합을 하면서 거대 시흥군으로 탄생했다가 해방이후 행정구역 개편 고정을 거치면서 소멸되는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에서 시흥군청 또한 지금의 서울..

[안양권지도]1979년 안양시(군포.의왕) 도시계획 계괄도

2019.10.30/ 1979년 안양시 도시계획 계괄도 안양시가 읍에서 시로 승격(1973년)한 이후인 1978년의 도시 계획을 담은 지도로 최승원 건축사께서 소정하고 있는 지도입니다. 1979년 당시의 안양은 경부선 철도 아래로 안양천이 흐르고 지역특산물인 포도가 알알이 익어가는 인구 15만여 명의 작은 도시로 인구 변화를 보면 1941년 10월 1일 시흥군 서이면이 안양면으로 개칭되었던 당시의 인구는 10,000명, 1949년 8월 15일 안양읍 승격 당시에는 20,021명, 1973년 7월 1일 안양시 승격 당시에는 111,075명에 불과했지요. 지도에는 안양시와 당시 시흥군이었던 군포읍과 의왕읍을 포함하고 있네요. 눈에 띄는 것은 안양시 각동 행정지명으로 안양 1,2,3,45,6,7,8,9동 등 ..

[안양권지도]1910년 10월 발행 조선교통전도 속 안양권

는 일본 오사카 대판매일신보사(大阪每日新報社)에서 신문9736호의 부록으로1910년 10월 1일 발행한 것으로 1899년 개통된 경인선, 1905년 개통된 경부선, 1906년 개통된 경의선 등 한반도를 종단하는 철도를 붉은선으로 그려지고 도로와 해로 등도 표기되는 등 조선 전체의 교통망과 조선 주요도시, 항구의 시가지가 상세하게 그려져 있다. 1910년은 경술년이고 융희(隆熙)4년으로 이 해 8월 22일 한일 합방조약이 조인(調印)되었고, 8월 29일 공포(公布) 되었다. 한반도에서는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가 설치되고, 9월 29일 통감부와 이사청을 조선총독부 및 소속관서로 하는 관제(官制)가 발표되었으며, 10월 1일부터 신임 총독이 임명되면서 식민정치가 시작되었는데 이 지도는 조선을 병합한 기념으로 ..

[안양권지도]19세기 초 제작된 여지도 속 안양권

19세기 초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여지도에 등장하는 수리산 지명 표기. 당시 안양 주변의 행정구역 명칭은 금천(衿川)과 과천(果川)이다. 금천은 조선시대 관아와 행궁이 자리했을 만큼 규모가 컷던 고을 행정의 중심이었으며 시흥현과 시흥군의 행정 명칭을 시작한 곳으로 1960-70년대 시흥이라 통칭하고(지금은 행정구역과 전혀 상관없는 시흥시가 사용함) 시흥역(금천구청역 바뀜)이 있었을 만큼 행정구역이 오래된 곳으로 안양은 고거 금천의 변방이자 때로는 과천의 변방이기도 했다. 금천은 원래 백제 영토였다가 고구려의 남하 정책으로 고구려에 편입되어 잉벌노현(仍伐奴縣)이 되었고, 신라가 삼국을 통일 한 뒤 757년(경덕왕 16) 곡양현으로 고쳐 율진군의 속현으로 삼았다. 고려시대 940년(태조 23) 금주(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