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옛사진읽기 599

1970년대 안양 구시장과 태평방직 정문앞 풍경

#안양 #동네 #골목 #옛사진 #안양1동 #구시장 #수푸루지 #임곡교 #안양천 #시대동 #태평방직/ 1920~1960년대 말까지 안양에서 가장 번화가였던 구시장이라 불리우던 시대동(市垈洞) - 현 안양1동의 1970년대 풍경으로 사진 중앙 리어카(두사람) 우측으로 태평방직 정문이 있고 담벼락을 따라 이어진 도로끝에는 비산동으로 연결되는 수푸루지 다리(현 임곡교)가 있지요. 태평방직은 안양3동의 금성방직(대농)의 자회사로 어렷을적 공장내에 연못과 대형온실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구시장(안양시장)은 1926년 1월 28일로 개시됐는데 호계동에 있던 군포장이 쇠퇴하면서 활기를 뛰기 시작했지요. 즉 1905년 안양역이 문을 연 이후 안양이 근대도시로 서서히 꿈틀되기 시작한 것이지요. 기록을 보면 군포, 의..

1968년 안양 1번국도와 수암천 옛 물길 다리

#안양 #기록 #기억 #역사 #옛사진 #만안초교 #수암천 #1번국도 #닐미샬로프 / 1968년 서울-수원간 1번국도상으로 안양역에서 화단극장을 지나고 만안초교 인근에 있던 폭이 좁은 다리를 건너는 군 차량, 승합차, 버스들의 모습으로 당시 석수동 미군부대에 전령으로 근무했던 닐 미샬로프가 칼라슬라이드로 찍은 것입니다. 현재 안양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도로는 사진의 만안로와 안양시내를 관통하는 중앙로, 경수산업도로 등 3곳이지만 1968-69년도 당시에는 사진에서 보이는 2차선의 1번국도가 서울에서 부산과 목포를 연결하던 유일한 도로였지요. 특히 이 사진이 귀중한 이유는 사진속에 보이는 다리 때문이지요. 저 다리 밑으로는 지금의 수암천이 수리산에서 안양9동과 안양3동, 안양4동을 지나 안양천으로 흘러들어가는..

1962년 안양 읍민관앞에서의 광복절행사

#안양 #기록 #기억 #역사 #동네 #골목 #1962년 #안양읍내 #시흥군 #읍민관/ 1962년 8월 15일 시흥군 안양읍에서 열린 광복절 행사장 모습입니다. 사진 왼쪽에 보이는 건물이 당시 시흥군과 안양읍내의 기관 행사들은 물론 영화관으로 이용됐던 읍민관(현 2001아울렛 건너편 다이소 건물)이며, 사람들이 서 있는 쪽이 현재의 안양 일번가 신한은행 안양지점 방향으로 즉 2001아울렛사거리에서 대규모 행사가 열리고 있는 장면이니 지금과 비교해 보면 그야말로 천지개벽을 한 것이지요. 당시에는 안양읍내 인구가 불과 10만도 되지 않던 시절입니다.(참고: 1912년 3412명, 1925년 6165명, 1935년 8957명, 1941년(안양면 승격) 10000명, 1949년(읍 승격) 20021명, 1973년..

안양 중앙시장의 1970년대 시장통 풍경

#안양 #기록 #기억 #역사 #만안구 #원도심 #동네 #골목 #안양4동 #중앙시장 #1970년대/ 안양에서 가장 큰 중앙시장의 1970년대 중반의 풍경으로 당시에 시장통에서 단골 손님이 많았던 수복고무신상회, 경상도상회의 간판도 보이고 신안슈퍼 건물도 있네요. 당시에는 가게 문들이 나무틀에 얇은 생철판을 부착해 만든 문들을 위와 아래틀에 끼워 미닫이문 처럼 밀어닫고는 마지막 문을 자물쇠로 잠그는 형태가 대부분이었지요. 안양에서 가장 오래된 시장은 1930-60년대 시흥군 안양읍시절 안양의 다운타운으로 우시장까지 있었던 시대동 안양시장-구시장(현재 안양1동 주공아파트 자리)이었는데 지금은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들어서 그야말로 천지개벽을 한 곳이지요. 중앙시장은 1961년 11월 6일 개설되었는데 구시장 상권..

1970년대 안양유원지의 그네장

#안양 #기록 #기억 #역사 #동네 #골목 #1960년대 #안양유원지 #안양예술공원 #그네/ 1970년대 중반경 안양유원지 그네장의 풍경입니다. 당시 안양유원지는 풀장과 수영장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여름뿐만 아니라 봄에는 딸기, 초가을에는 포도와 보트를 타며 데이트를 할 수 있어 그야말로 서울과 수도권 주민들의 휴식처로 도깨비터널, 활쏘기, 총쏘기, 공던지기 등 당시로서는 재미있는 놀이시설이 많았지요, 그네장도 그 중에 하나로 맘모스 수영장 건너편 지금으로서는 벽천분수 광장 인근에 있었는데 아찔할 정도로 까마득하게 치솟는 그네를 보기위해 많은 사람들이 운집할 정도로 인기였지요, / 사진출처; 안양사료관 영상물

1954년 지어진 안양 장내동성당(중앙성당)

#안양 #기록 #역사 #장내동상당 #담안 #중앙성당/ 안양지역 최초로 1954년에 안양4동에 지어진 장내동성당(현 중앙성당)의 초창기 모습입니다. 장내동성당은 당시 서울교구 관할로 1937년 밤나무밭 6,657평을 교회부지로 매입한 후 1954년 9월 7일 초대 주임신부인 구천우(具天祐)신부가 안양읍내에서는 처음으로 24평의 목조건물 성당을 지어 노기남 주교의 주례로 축성식을 가졌지요. '장내동성당' 설립 후 1956년 5월4일에는 안양유치원이 개원하여 안양지역 최초로 유아교육을 시작했습니다. 1958년에는 사진속 성당을 허물고 시멘트와 목조를 이용하여 명동성당과 같은 고딕형 성당을 신축했는데 1959년 봉헌식을 갖고 안양지역 사회의 상징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했지요, 특히 종탑에는 이태리에서 들여온 종 3..

안양역 구내 재건호 특급열차 탈선 사고 현장(1963.02)

#기록 #기억 #안양 #안양역 #구시장 #사고 #옛사진/ (사진출처 국가기록원)/ 1963년 2월 14일 안양역 인근에서 발생한 재건호의 탈선 사고 현장 모습입니다. 재건호는 서울과 부산을 오가던 특급열차의 명칭으로 이날 사고는 당시로서는 매우 큰 사고였기에 대한뉴우스(제404호/ 1963년 2월 16일)에 보도되고 국무회의에서 대책을 논의하기도 했습니다. 제 어릴적 기억으로는 부산발 서울행 재건호가 안양역으로 진입할 무렵의 안양시장(구시장) 건널목 앞에서 발생했는데 구경 나온 사람들로 구사장 인근이 혼잡할 정도였던 것이 생각납니다. 또 안양에서 과천으로 가는 길목이 막혀 버스가 호계동쪽으로 우회했지요. 당시 자료와 신문기사를 찾아보니 '재건호가 안양읍 남부포인트를 통과 직후, 기관차 뒤에 달렸던 보일라..

김중업 설계 유유 안양공장 직원 조회(1962.03)

#기록 #기억 #안양 #안양유원지 #안양예술공원 #유유산업 #김중업 #옛사진/ (사진출처 국가기록원) 1962년 3월 15일 촬영한 유유산업주식회사 안양공장에 근무하는 직원들의 조회 모습으로 "국민체조 시작~~" 음악소리에 맞추어 체조하는 모습이 과거로 돌아간 듯 하다. 안양유원지(현 안양예술공원) 초입에 있던 유유 안양공장(현 김중업박물관)은 통일신라 '중초사(中初寺)'에서 고려 '안양사'로 이어져 조선까지 불맥을 이어간 사찰지로 1950년대 한국 건축계의 거장 고 김중업씨가 설계한 제약공장이 들어섰다. 유유 안양공장 터는 유유 창립자인 유득한 씨가 1941년 매입해 6.25전쟁 이후인 1959년 5월 안양공장을 건립한 후 2007년 제천으로 이전하기 까지 원기소 등 의약품을 생산해 오던 곳이다. ㈜유..

1968년 여름 안양유원지 계곡의 물놀이 풍경

#안양 #기록 #기억 #역사 #옛사진 #안양유원지 #안양예술공원 #닐미샬로프 1950-1970년대 수도권 주민들의 여름철 피서지로 각광받던 안양유원지(현 안양예술공원) 계곡의 1968-69년 풍경으로 안양 석수동 미군부대 전령을 근무했던 닐미샬로프가 코닥슬라이드 필름으 로 찍은 사진입니다. 당시에는 안양유원지 계곡에 물이 참 많았답니다. 1932년 계곡을 돌로 막아 만든 안양 제1풀, 제2풀 공짜풀장이 현 주차장에서 100여 미터 올라가면 있었고, 그 위쪽으로 유료풀장이 대양장이 있었지요. 가족들이 피서를 오면 풀장에 가지 않다라도 너럭바위가 좌악 깔린 계곡옆 천막을 빌려 바리바리 싸온 음식과 수박에 칠성사이다를 마시고 아이들은 물가에서 물장구 치기도 했지요.

1968년 안양유원지 대영풀장앞 콘크리트 보

#안양 #기록 #기억 #역사 #옛사진 #안양유원지 #안양예술공원 #닐미샬로프 1950-1970년대 수도권 주민들의 여름철 피서지로 각광받던 안양유원지(현 안양예술공원) 계곡의 1968년 풍경으로 안양 석수동 미군부대 전령을 근무했던 닐미샬로프가 코닥슬라이드 필름으로 찍은 사진으로 사진 속 위치는 안양유웡지 최초의 유료풀장이었던 대영장 앞 천을 막은 보(뚝)로 보 위쪽(현재의 안양파빌온 앞 분순 조형물)으로 여름이 지나 물이 차가워지면 2사람이 타는 나무 보트가 노니는 공간이기도 했지요. 안양유원지 계곡에는 물이 참 많았답니다. 기록을 보면 조선시대 말에는 관료들의 피서지였고, 일제강점기인 1932년에는 계곡을 돌로 막아 안양풀이라 명명하고 유원지입구 철길에는 임시역이 만들어지고 열차가 정차할 정도로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