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보따리 503

[기억-조성원]안양읍내 하나 있던 안양목욕탕의 추억

[조성원]어렷을적 명절날 목욕탕의 추억 (묵은때) 명절맞이로 귀경을 서둘러 떠난 직장이 모처럼 한가하다. 퇴근 정시보단 조금 이른 때 거리로 나왔다. 가볼 곳이 있어서다. 누가 그곳을 들리라고 하는 것은 아닌데 이 무렵엔 꼭 찾게 된다. 기실 그제도 곳을 다녀왔으니 오늘 또 가기는 그러하다. 그럼에도 곳을 가지 않아서는 왠지 찜찜하다. 생각해보니 무릇 그 시절 이 맘 때 찾던 그 습성이 나를 잡아끄는 것일 터 이 또한 명절의 한 풍습이라 해두어야 할 것이다. 역시 생각한 대로 곳은 엄청 붐빈다. 오늘 같은 대목은 근래에 드문 일이다. 이때쯤을 상인들은 대목이라 하던데 바로 이곳이 대목이다. 찜질방인가가 생기고선 할일이 없어져 곳이 객쩍다 하였는데 모처럼 신바람이 난다. 해를 넘기기 전 묵은 때를 벗겨야 ..

[기억-조성원]어머니 품 같은 수리산의 추억

[ 조성원]어머니 품 같은 수리산의 추억 (수리산을 아시는가) 수리산은 안양중심부에 위치한 음기가 서려있다는 자그마한 육산이다. 대표적인 봉으로는 산본 신시가지에 서있는 슬기봉(475m), 안양시내 서쪽 중앙에 위치한 관모봉(426m), 그 뒷 편에 서서 넌지시 주봉임을 알리는 태을봉(488m)으로 이루어졌다. 인구 2만의 그 시절의 읍내로부터 인구 50만이 넘는 지금까지 수리산은 그들을 모두 보듬은 안양의 어머니다. 수리산을 오르는 데는 여러 갈래의 길이 있다. 같은 집에 태어났어도 서로의 삶이 다르듯 수리산은 마치 이복동생을 데리고 있는 양 가는 갈래에 따라 닮은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은 느낌을 제각기 전해주며 비교적 넓게 퍼져있다. 수리산 남쪽의 산본리 버스종점 인접한 한양아파트에서 약수터를 지나..

[기억-조성원]1960-70년대 그 시절 안양의 기억

[조성원]1960-70년대 그 시절 안양의 기억 (그 시절의 안양) 오늘 새벽도 추적추적 늦은 여름비를 뿌렸지만 가는 세월은 이정표 없이 무작정 달리는 기차와도 같이 한 계절의 끝을 알리는 정거장을 이미 통과하였습니다. 창문 틈에 서린 기운이 어제 같지가 않습니다. 그 가는 속도는 얼마쯤 되는 것일까요. 덜 여문 창밖의 그림 속엔 어느새 추석이란 명절이 다가섭니다. 이때쯤이면 자연 마음은 고향을 향합니다. 나 역시도 안양을 떠난 지 햇수로 25년이 넘습니다. 흘러간 세월만큼 너무도 변한 안양! 동구 밖에 포도밭 고추밭 냇가가 그대로 있는 정감어린 안양도 아닌데 지금도 여전히 애착을 느끼는 것은 내 삶의 깊이만큼이나 골 패인 마음을 고향의 흙냄새로 치유 받고 싶은 단순한 동심의 발로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기억-조성원]안양 병목안행 기찻길옆 '길모퉁이 카페' 추억

[조성원]안양 병목안행 기찻길옆 '길모퉁이 카페' 추억 (지금도 여전히) 고유란 본디부터 지니고 있거나 그 사물에만 특별히 있는 것을 의미한다. 그로 느껴지는 소중함이다. 고유하여 드물 것 같지만 어느 것이든 또 누구나 다 그런 특별의 것을 최소 하나씩은 지녔다. 요즘은 어느 것에 쓰던 알리는 이름들이 예사롭지 않다. 특히 길가에 펼쳐진 간판은 참으로 다채롭다. 어느 것은 구수하고 어느 것은 산뜻하여 날아가는 새가 연상되고 또 어느 것은 파란하늘에 우수를 자아내어 지닌 고유함을 느낌으로 전한다. 얼마 전 보았던 횟집 간판 하나가 상큼하게 떠오른다.‘푸른 바다 세상’. 그럴듯한 간판 하나로 길가에 그리움이 생기고 사랑이 넘치고 아련한 추억이 낙엽처럼 뒹군다. 그 간판에 취해 서성이는 나그네도 있을 법하다...

[기억-조성원]1960년대 안양읍내 중심에 놓인 '신작로'

[조성원]1960년대 안양읍내 중심에 놓인 '신작로' (신작로 길) 언덕너머에 신작로 길이 생겼다. 동네 사람들이 다들 신작로라 불러서 나는 그 길 이름이 신작로인 줄 알고 지냈다. 신작로는 필요해 의해 새로 만든 길이다. 문명의 길 실크로드와도 같이. 문명세계에서 필요는 빠른 시간을 전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기에 그 길은 미루나무 마냥 시원스럽게 쭉 뻗어 있으며 문명에 편리하도록 반듯하다. 그렇지 않더라도 그 길은 새로운 사물이나 새로운 사람들을 대동한다. 마을길이 끊기면 마음의 길이 열린다는 말이 있다. 그 말은 첩첩산중에 갇힌 마을의 적막함을 이를 때 하는 말이고 문명 길에서는 길이 끊기면 황량함 내지 황당함이 되고 말 것이다. 촌로들은 바깥세상을 기웃이라도 할 양으로 으레 신작로 길 초입..

[기억-조성원]60년대 안양에서는 이런 놀이를 했다

[조성원]60년대 안양에서는 이런 놀이를 했다 ( 노는 것이라면 ) 아이들은 놀기 위해 태어난다. 해 저무는 쯤은 걱정도 아니다. 배고픈 것도 일도 아니다. 댓 끼는 건너 띄어도 그냥 참을 만하다. 그 무엇이든 노는 것에 앞서가랴. 놀기는 그래도 긴 방학이 낀 겨울철이 제일이다. 그 쯤 시간은 노는 편이니까. 긴 겨울 철 아랫목을 차지한 누구는 토끼털 귀마개에 벙어리장갑에 한 겨울밤을 맴돌던 메밀묵, 찹쌀떡을 연상할 것이지만 성산한 아이들은 바람결이 서늘할 그 무렵부터서 손이 쩍쩍 갈라져도 늘 행선지는 골목길이었다. 고추밭이 텅텅 비면 휑하니 북풍은 분다. 그쯤엔 연을 푼다. 곳은 미루나무도 비켜서 저 멀리 벌 터 동네 까지 하늘이 신작로처럼 확 뚫려 있다. 가오리연은 만들기도 쉽다. 밀가루포대나 지나간..

[기억-조성원]1960년대 안양 영화관의 추억

[조성원]1960년대 안양 영화관의 추억 ( 그 시절 영화) 이윤복 학생은 살 길이 아득했다. 온 집안이 그의 구두 통에 목숨을 기대어 살아야 했다. 하루도 거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한 손엔 책가방 또 한 손엔 구두 통. 비오는 날엔 껌팔이. 여름내 보리 이삭을 줍던 동생 순나는 집을 나갔다. 배고파 눈이 휭휭 할 땐 아버지 약 살돈을 참지 못하여 수제비를 사먹고 울곤 하였다. 그래도 그의 가슴엔 질긴 삶의 예울 소리가 한없이 퍼진다. “ 껌 사이소 , 마 예 껌.” ‘저 하늘에도 슬픔이’ 아마도 이 영화가 내가 본 최초의 영화이거나 그렇지 않다면 너무도 많은 눈물을 짜 낸 덕분으로 여전히 기억이 생생한 무연한 영화가 아닐까 싶다. 애처롭고 불쌍하여 울었고 엄마를 찾는 안타까움에 마음이 아팠다. 나를..

[기억-조성원]안양에는 예쁜 동네 이름 있었다

[조성원]안양에는 예쁜 동네 이름 있었다 (안양 지명은) 안양은 어디에서 유래된 지명일까. 글을 다듬다 문득 떠오른 생각이다. 그간 무심했다는 생각도 든다. 양산의 통도사에서 안양암이란 암자를 본 적이 있다. 安養이란 한자가 똑 같아 혹여 불교에서 유래된 지명은 아닐까 싶었다. 요즘은 동네 인터넷에 접속하면 사는 동네에 대한 현황이 조근 조근 잘 설명되어 있다. 곳에서 발췌한 사항이다. 안양(安養)이란 명칭은 고려 태조 왕건에 의해 창건된 안양사(安養寺)에서 유래되었다. 신라 효공왕 4년(900)에 궁예의 후예인 왕건이 금주(시흥)와 과주(과천)등의 지역을 징벌하기 위해 삼성산을 지나게 되었다. 이때 산꼭대기의 구름이 5가지 빛으로 채색을 이룬 것을 보고 이상하게 여겨 사람을 시켜 살피게 했다. 구름 밑..

[기억-조성원]60년대 국민학교 졸업 선물 '도장'

[조성원]60년대 국민학교 졸업 선물 '도장' (졸업과 도장) 우리 학교(안양초등학교)는 큰 강당이 있었다. 학예발표회라든지 영화상영 같은 많은 행사를 그곳에서 하였다. 나는 중앙에 두 번 서봤다. 한 번은 합주 반 일원으로 하모니카를 불기위해 올라갔으며 또 한 번은 졸업식 때 작은 상을 받기 위해 단상에 올랐었다.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아름 선사합니다. 물려받은 책으로 공부를 하며 우리-는 언니 뒤를 따르렵니다." 이 노래를 부르면 눈물부터 주르륵 흘러내렸던 순순한 시절이 있었다 . 송사와 답사는 또 어떠하였던가. 강당 한구석에서 귀뚜라미 같이 엷게 훌쩍이던 소리는 어느 틈 개구리 울림통 마냥 일시에 터져 울음바다가 되었다. 요즘 아이들은 눈물은커녕 졸업노래를 아예 행사에서 제외시..

[기억-조성원]안양초-안양중-안양공고 축구의 배경

[조성원]안양초-안양중-안양공고 축구의 배경 (새학기) 방학숙제를 3일 만에 해치웠다. 그런 엉터리 숙제물이 전시하는데 뽑혔다. 나는 몰래 전시실에 들러 내 숙제 물을 꺼내왔다. 짧은 봄방학은 덤으로 얻은 것 같아 겨울 방학보다 더욱 고소했다. 그리고는 새 학기가 시작된다. 반 편성도 다시 하고 선생님들도 전근을 가시고 또 새로 전학 온 아이들도 생겨난다. 안양이 커져 가면서 갈수록 전학 온 아이들은 늘어만 갔다. 사투리가 심한 아이들은 입을 오므려가며 표준말을 하려했지만 그것이 곧 웃음꺼리였다. 새 반이 편성되면 서먹서먹하고 같은 반에서 올라온 아이들끼리만 어울린다. 한동안은 말 수 적어진 아이들로 교실은 조용하다. 탐색의 과정이 있다.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기 위해서는 누구든 그러한 과정을 거친다. 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