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보따리/기사 46

[옛신문]시흥군청(영등포->안양) 이전 운동(1936.02.26 동아일보)

2023.01.28/ #아카이브 #옛신문읽기 #동아일보 #1936년 시흥군청 이전(영등포->안양) 운동 기사 동아일보 1936년 2월26일자 자료 발굴: 시흥시사 3권-시흥의 근현대중에서 기사는 동아일보(1936년 2월26일자)에 게제된 시흥군 청사 이전운동이다. 1936년 영등포읍과 북면 일원이 경성으로 편입된 후, 영등포읍에 소재하던 군 청사를 이전하자는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영등포의 경성 편입 이전에도 청사가 있는 영등포가 시흥군 전체로 볼 때 너무 치우친 지역에 있어 불편한 점이 많았으므로, 지역의 유지들 사이에서는 이미 청사 이전 논의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에 영등포가 경성으로 편입되자, 청사를 이전하자는 논의가 활기를 띠게 되었다. 1936년 2월 21일 군내의 공직자와 유력자 등 1..

[옛신문]제1회 안양 밤줍기대회 참관 후기(1933.10.04 동아일보)

#기록 #옛신문 #안양 #습률대회 #밤줍기대회/ 1933년 10월 4일자 동아일보에 게제된 제1회 전국 부녀자밤줍기대회(습률대회)의 참관 후기. 일제강점기 이전 안양 담안(4동)과 율목동(3.9동)은 밤나무밭으로 1933년과 1934년에는 동아일보사와 그 자매지인 신가정(현재의 여성동아 전신) 주최로 전국부녀자 밤줍기대회가 열릴만큼 밤의 명산지로 유 명했다. 당시 동아일보에 보도된 밤줍기대회 관련기사 중 그 일부를 보면 다음과 같다. 아래 글은 습률대회에 다녀온 기자가 쓴 참관 후기로 보인다. 금물결 치는가을들에 전개된 호화판 제1회 습률대회 후기-k생 동아일보 | 1933.10.04 기사텍스트) 새벽 하늘에 별이 채 살아지지도 않은 듯 싶은 기차가 떠나려면 아직도 한시간 반은 있어야 되는때부터 용산역은..

[옛신문]경향신문 지령10000호 특집 '강산만리' 안양편(1979.03.14)

2022.11.12/ #옛신문 #아카이브 #자료/ 경향신문 지령10000호특집 江山萬里(강산만리) 1979.03.14 기사 칼럼/논단) 안양고향) 따라 靑(정따라 토박이 에세이 포도알 애향심은 아득한 「淨土(정토)」..."내일의 繁榮(번영) "힘차게 公害 공해없는 衛星工業(위성 공업) 도시로 새面(면모) "地域(지역) 발전"에 강한 紐帶(유대) (과천) (반월) 光( 광)업 고 더욱 活(활기) 肥(비옥한 타원 (분지) 나의 고향은 급행열차가 서지 않는 곳 친구야 놀러오려거든 3등객차를 타고 오렴. 鄕土(향토)의 토박이 K시인은 安養(안양)을 이렇게 노래했다. 서민적이고 전원적인 흙의 냄새를 담뿍 담고있는 이 시의 安(안양)은 원래가 佛敎(불교)에서 「마음을 편안하게 지니고 몸을 쉬게 하는」極樂土(극락정토..

[옛신문]22명 생명 앗아가 안양 그린힐 화재(1988.03.25)

2022.11.06/ #기록 #옛신문 #안양 #그린힐화재/ 안양에서 발생한 아품의 사고중 하나. 22명의 여성노동자가 화재로 숨진 그린힐 봉제공장 사고 1988년 3월 25일 안양시 비산1동 그린힐 봉제공장(비산종합상가 빌딩 3층. 현 비산이마트 건너 에비뉴빌딩 자리)에서 화재가 났다. 일에 지쳐 기숙사에서 곤히 잠을 자던 소녀 스물 두 명을 모두 죽음으로 몰아간 비국적인 사건이었다. 화재 원인은 분명치 않았다. 그러나 불법 기숙사 운영과 무허가 공장을 숨기기 위해 출입문에 쌓아놓은 제품이 인화성 물질 역할을 했다. 하나밖에 없는 출입문에는 철재 셔터로 닫혀있고, 지상으로 연결된 화장실 창문에는 쇠창살이 달려있어 불 속에서 소녀들은 살기 위해 화장실에서 몸부림치다가 켜켜이 쌓여 타 죽고 만다.당시 여성 ..

[옛신문]안양 유유공장 화재(1996.04.19)

2022.11.06/ #기록 #기억 #화재 #유유산업 #옛신문 #옛사진/ 사진 제공: 안양소방서에 근무했던 김종철 소방관. 사진속 화재가 발생한 장소는 현재의 특별기획전시관이있던 곳이다. 1996년 4월 29일 오후 안양시 만안구 석수1동 모기약제조업체인 유유후마킬라㈜에서 대형화재가 발생했다. 이날 불은 창고안에 있던 18억9천7백여만원 상당의 분무식 모기약 완제품과 기계류, 창고건물 3채를 모두 태운 뒤 인근 1백40평규모의 비닐하우스로된 화원(주인김태종) 2채와 김씨의 승합차로 옮겨 붙어 1천3백여만원의 재산피해를 내 전체 재산피해액은 19억1천여만원(경찰추정)에 달하는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불로 이 회사 생산부장 신순성씨(54) 등 직원 2명과 이명숙양(17) 등 인근 지역주민 6명, 안양소방서소속..

[옛신문]최초의 원자력연구소 안양 박달리에 건설하려 했다.

2022.03.07/ #옛신문읽기 #아카이브 #기록 #역사 #응답하라1958 #안양 #원자력연구소/ 우리나라 최초의 원자력연구소 안양 박달리(군용지)에 건설하려 했다. 옛 신문과 초대 문교부 원자력과장을 지냈던 윤세원 박사의 비망록 등 기록을 보면 고 이승만 전 대통령은 원자폭탄에 관심을 갖고 우리나라 최초의 원자로(연구용 원자로)를 서울에서 떨어진 진해, 안양 등지에 세우려고 했다. 그러나 미국측의 반대로 결국 서울공대가 있던 공릉동에 지어졌다. “이승만 대통령도 원폭제조 시도” 2005년 05월2일자 경향신문에 따르면 서울대 김성준 연구원(과학사 및 과학철학협동과정)은 지난달 28일 서울대에서 열린 한국과학사학술대회에서 ‘1950년대말 두 미국인 과학자의 한국 원자력 보고서’를 발표했다. 김연구원은 ..

[옛신문]신륵사 소풍길 대참사 당한 안양 흥안초 어린이들(1963.10.24)

2022.03.03/ #옛신문읽기 #아카이브 #기록 #역사 #응답하라1963 #참사 #사고 #안양 #흥안초교 #안양남초 #남한강 #여주/ 안양의 큰 아픔중 하나로 1963년 여주 신륵사 소풍길에 남한강을 건너다 숨진 안양 흥안초교생들 이야기 안양과 여주는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인연이 있다. 교명이 바뀌었지만 현재의 안양 남초등학교는 1960년대 흥안국민학교로 불리웠다. 특히 노년의 졸업생들에게 여주하면 슬픈 추억이 서려 있다. 신륵사로 소풍갔다가 남한강에서 익사한 선후배들이 있기 때문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50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1963년 10월 23일 안양시 흥안초등학교 5·6학년 학생과 교사, 학부모 총 158명이 여주 신룩사로 수학여행을 왔다가 귀가하던 오후 2시 50분 무렵 여주읍 연양리에서..

[옛신문]안양, 시 승격 당시 땅값 평당 3-5만원 수준

2022.02.26/ #옛신문읽기 #아카이브 #기록 #역사 #응답하라1974 #안양 #군포 #부동산 #지역경제 안양 시승격 당시 1970년대 중반 땅값 평당 3-5만원 수준. 각광의 여울따라 ---전철역 주변 부동산 가이두 3 安養(안양)지구 조선일보 | 1974.03.12 기사(기획/연재) 안양지구 70% 오른 곳도, 거래한산 도심까지 30분대 지주,값조종-8월 겨냥 안양은 서울역에서 24km 떨어진 인구 12 만명의 위성도시로 서울과 수원의 중간지점. 관악산 입구의 유원지와 근교의 포도밭은 서울 시민의 당일 레저코스로 인기를 끌고 있다. 60년대 후반부터 굵직한 공장들이 다. 투어 들어서 시외곽지대는 많은 공장이 들어섰고 작년 7월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시로 승격, 도시개발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6..

[옛신문] 1964년 지축을 흔든 모락산 탄약분해소 폭발사고

2022.02.25/ #아카이브 #기록 #역사 #옛신문읽기 #의왕 #대폭발 #응답하라1964/ 안양의 지축을 뒤흔든 폭발사고 세건이 있다. 그중 옛 신문에서 찾아낸 기록은 1964년 3월 5일 오후 3시경 모락산 자락 안양교도소 인근에 위치한 안양탄약분해소 폭발사건으로 당시 중앙일간지 신문 1면 톱에 실렸던 엄청난 사건이었다. 첫번째는 일제시대 말기인 1941년 천혜의 요새인 박달동 수리산 깊은 골짜기에 일제가 육군성 소속 탄약 저장시설(일명 군용지)을 설치하면서 안양과 폭발물과의 인연은 시작됐다. 일제의 패망으로 탄약저장 시설과 탄약을 인수한 미군은 일본군 탄약을 안산 넘어가는 본드레미 고개 아래 굴을 파서 그 안에서 폭발시켜 폐기처리했다. 당시의 목격자 중의 한 분인 고 변원신씨는 주민대피령이 내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