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사진기록/탐사공지

[공지]안양탐사대 132차 탐방(20180616)_안양여고 뒷동네

안양똑딱이 2018. 6. 13. 16:14

 

안양탐사대 132차 여정_안양2동 안양여고 주변 동네

6월 16일(토) 오후 4시/ 집결_안양여고 버스정류장


안양기억찾기탐사대가 모이는 시간을 오후3시에서 오후4시로 변경합니다. 날이 무더워지고 해도 길어졌기 때문이니 찾오 없으시기 바랍니다.

 

안양탐사대가 2018년 6월 16일 132차 여정으로 찾아갈 곳은 안양2동 안양여고 뒷편으로 예전에 북부동이라 부르던 곳입니다. 60년대 중반 들어 택지를 분할해 문화주택들이 골목마다 들어섰고 그 덕분에 지금도 골목길이 넓찍넓찍하지요. 옛 단독주택들은 다 없어지고 그 자리에는 연립, 다세대, 다가구주택에 이어 4년전부터 도시생활형주택이 들어서는 공사들이 시작됐는데 지금은 옛 골목의 정취가 많이 사라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안양2동에는 어수정노인정도 있는데 조선시대 정조 임금이 화성 능행차를 가실때 마신 물 즉 '어수(御水)정'이 있었음에 유래한 것이지요. 이 마을 태생의 전 박달동 경노회장 김 학선옹의 증언에 의하면 어수를 주민들은 '으수'라고 불렀고, 으수가 솟아나는 샘이 들 한가운데 있었던 연유로 들 이름을 '으수들'이라 불렀으며, 그 으수들이 내려다보이는 지점에 자신의 생가가 있어서 아침나절이면 항상 연무가 '어수정(御水井)'을 중심으로 자욱히 피어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네요. 또 샘 주변에는 수초와 고기가 살지 않을 정도로 물이 맑고 찼으며, 아무리 흉년이 들어도 마르는 법은 없었다는 것.
임금께 진상한 물이니 당연히 안양지역에서 가장 물맛이 좋았을 것이고, 6,100여 명의 사람과 1,400필이 넘는 말의 목을 축이자면 수량도 풍부한 샘이었을 것입니다.
또 작고하신 고 변원신 어르신 말씀과 안양시지(安養市誌)에 의하면 1930년대 초 일제는 조선에 방직공장을 건설하기 위하여 전국에 걸친 수질검사를 실시하였는데, '어수(御水)물'을 샘플로 채취해서 검사해본 바, 방직공업에 가장 적합한 불순물이 없는 물로 평가가 나고 현 안양2동과 박달동 경계지가 물이 제일 많이 고이는 지점으로 조선직물주식회사(해방이후 금성방직-대농)를 건립, 펌프시설을 설치하고 직물을 제조, 광목과 군복 등 2차 대전 시 군수물자로 공급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1950년대에는 금성방직 내에 가로 35미터 새로 50미터 이상의 저수지를 파서 물을 끌어가도 일대의 전답에 물을 대는 데 부족함이 없었던 어수정(御水井)은 60년대 이후 안양2동과 박달동이 택지로 개발되면서 사라져버리고 말지요. 이러한 어수정이 원래 위치하고 있던 지점은 알려진 바와는 달리 금성방직 담밖 약 50미터 지점으로, 지금은 민가가 되어버린 박달동 68번지 43호와 45호 및 47호 주택의 중간 지점으로 추정.
이 어수정에서 약 500미터 떨어진 안양여고에서 청소용 허드렛물로 지하수를 개발해서 사용하고 있는데, 물이 차고 맛이 좋다는 소문으로 이 지하수가 과거 정조 임금이 드시던 어수의 물맛을 계승하고 있지나 않은가 하는 생각입니다.

 

 

 

안양탐사대는 도시와 마을과 동네의 골목길에서 사라지고 변화되는 흔적들을 찾아 지난 2003년 2월부터 매주 토요일 마을과 동네 골목길을 걷는 마실을 해 왔습니다. 사진, 영상, 스케치, 이야기 등으로 도시를 기억하고 기록하고 이를 통해 또다른 프로젝트, 기획 등을 해보려는 도시.마을.골목연구, 건축, 사진, 걷기 등에 관심있는 시민은 탐사여정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탐사에 참여코자 하시는 분은 SNS 페이스북 안양기억찾기탐사대 ( www.facebook.com/groups/132023160294699/ )에 접속후 신청해 주시거나 전화주시기 바랍니다. 문의: 길잡이 최병렬(016-311-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