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영상기록/안양

[영상]사라지고 다시 태어난 안양 덕천마을(2016.12.31)

안양똑딱이 2017. 4. 2. 13:47

 

덕천의 어제와 오늘

○ 제작 : 안양시 홍보실

○ 게시 : 2016.12.31

 

안양시홈피 영상보기 http://tv.anyang.go.kr/1819

 

안양 덕천마을은 주접동 동북쪽에 있는 안양천변에 자리한 마을로 조선시대에는 사람들이 거주하지 않았으나 일제강점기 초에 시흥시 정왕동에 살던 원정상(元貞常, 안양여고 원종면 선생의 증조부)씨가 분가를 나와 지금의 안양7동 213에 정착했고, 이어 전주 이씨, 창령 성씨등이 세거하면서 자연마을이 형성되었고 ‘벌터’라 불리었다. 1978년 마을의 유지들에 의해 ‘덕천마을’로 개칭되었고, 이듬해 5월 1일 안양 6동에서 분리되어 안양7동으로 분동(分洞)된다.

이곳은 1960년대만 해도 대부분의 지역이 농경지였다. 예컨대, 명학역과 주접지하도에 이르는 경부선 철도변은 아카시아 동산이었으며, 안양 냉동사(안양7동 196-15)자리는 농경지(논), 주식회사 삼풍(안양7동 199)자 리는 논과 포도밭, 대영모방주식회사(안양7동 196-12)자리는 잎두밭, 동화 약품공업주식회사(위치, 안양 7동 189)자리는 농장이었다.
이 마을이 번창하기 시작한 것은, 토박이 원종만(안양7동 138-32, 원정상 증손)씨가 허허벌판에 덕천슈퍼 건물을 신축한 후, 7동새마을금고(안양7동 130-27)를 비롯 덕천국민학교(안양7동 192-5), 덕천우편취급소 등의 기관과 공장들을 유치하는데 부터다.

1960년대 산업화의 물결을 타고 안양냉동, (주)삼풍, 대영모방, 동화약품 등 크고작은 공장들이 속속 들어서면서 덕천마을 남쪽은 공업지대로 변하였다. 이어 덕천초등학교가 개교하였고 지금은 아파트형 공장인 유천팩토피아 건물에 공장들이 많이 들어섰으며 동아아파트, 준마아파트를 비롯한 다세대 주택들이 많이 건축되면서 공업과 상업 주거지역이 공존하기 시작했다. 
덕천마을은 지난 1973년 구획정리사업으로 계획적으로 개발된 지역이지만 급속한 산업화에 따른 도시화로 인한 인구과잉, 도시기반시설의 과부하, 도로폭의 협소, 안양천 범람으로 인한 잦은 침수와 철도소음에 시달려 왔다.

결국 주거지역이 자리했던 만안구 안양7동 148의 1 일원 25만7천590㎡에 달하는 면적에 대한 재개발사업이 추진돼 안양시는 총 4천250가구의 아파트를 건설하는 주택재개발사업에 대해 지난 2006년 9월 7일 사업시행자로 한국토지주택공사(LH) 를 지정 고시했다.

이어 LH는 2008년 12월 19일 사업시행 인가를 받아 삼성물산·동부건설을 시공사로 결정했다. 또 2009년 2월10일 권리가액을 통보한데 이어 8월 25일 분양신청을 완료했다.

안양 덕천지구 재개발사업은 대규모 공공물량으로 사업규모가 클뿐 아니라 주택공사가 턴키베이스 방식으로 발주한 아파트중 최대 규모인 5950억원에 달하는 대형 프로젝트로 대형사들이 눈독을 들인 결과 삼성물산 건설부분과 동부건설이 65:35 지분 컨소시움으로 참여해 수주했다가 동부건설의 부도로 삼성물산이 단독으로 시공한다.

이에 덕천마을에는 전용면적 39㎡ 633가구를 비롯 49㎡ 96가구, 59㎡ 1천308가구, 84㎡ 1천634가구, 114㎡ 384가구, 139㎡ 195 가구 등 4천250가구의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다. 이는 32층 높이 아파트 35개동이 들어서, 세대수만 4천2백50가구. 입주자만 1만 2천여 명에 미니 신도시인 '래미안 안양 메가트리아'가 태어났다.

그러나 덕천지구 재개발사업 추진과정에서 부동산 감정평가를 놓고 일부 주민들이 비대위를 결성하며 반발하자 위원장이 주민들앞에 나서지 않은채 일방적으로 진행하면서 재평가와 사업 전면취소 등을 요구하며 집단 시위에 나서는 등 관리처분계획 통과까지 순탄치 않은 과정을 거쳤다.

여름철 물난리가 나면 안양천의 범람으로 골목길이 물에 잠기던 동네 덕천마을은 이제 고층 건물이 우뚝선 미니 신도시로 변모해 과거의 모습은 흔적없이 사라지고 추억과 기억만으로 남게됐으며 마을의 절반에 해당하는 덕천초교 주변의 동네와 더불어 남쪽의 명학역까지 이어지는 소규모 공장들과 아파트형 공장들이 자리한 지역 또한 서서히 개발의 바람이 불고 있다.

 

덕천마을 지명유래

이 마을 본래의 이름은 넓은 벌판에 있다고 하여 벌터 (坪村)라 칭했는데, 1977년 7월 대홍수 때 안양천의 범람으로 많은 수재민이 발생하자 수재민촌(水災民村)으로 불리웠고, 이 해 9월에 안양의 시내버스(삼영운수)가 이 곳에 버스노선을 개설하면서 버스 안내판에 수재민촌으로 명기하자, 당 시 이 마을의 새마을지도자였던 최돈세(崔燉世)가 중심이 되어 긴급 주민회의를 개최한 결과 수재민촌 이란 마을명이 좋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장차 2세 교육을 위해서도 바람직스럽지 못하므로 차제에 새로운 마을명을 짓자는 제의가 많아, 큰 하천인 안양천에 위치해 있다고 하여 큰 德 자에 내 川 자를 취해 덕천마을 (德川洞)으로 명명했다가, 안양천의 오염으로 이미 지가 좋지 않다는 여론에 따라 1년만인 이듬 해(1978) 9월에 이곳 어린 이들이 샘솟듯이 씩씩하게 자라서 나라에 큰 일꾼이 되라 는 뜻으로 큰 德 자에 샘 천(泉) 자를 취해 덕천마을 (德泉洞)로 개칭하고 마을입구에 덕천마을 이란 표석을 설치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