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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선생님이 들려주는 우리고장 역사/ 반월의 근대교육1- 둔대리

안양똑딱이 2016. 9. 27. 19:22

선생님이 들려주는 우리고장 역사/ 반월의 근대교육1- 둔대리

 

지역유지 손주사랑이 낳은 '교육의 산실'
배재학당 출신 황삼봉 가정교사로 초빙
마을학생 가르칠수 있는 둔대교회 설립

안산의 가장 동쪽에 위치한 반월은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떨어져 있는 느낌이다. '반월'이라는 이름은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구역 개편으로 광주군 소속이었던 3개 면이 수원으로 통합되면서 처음 불리게 됐다. 그러니 올해는 '반월'이라는 이름을 가진 지 102년이 된다.

반월은 본디 광주군 소속의 성곶면·북방면·월곡면이 1906년 안산군으로 이속됐다가 1914년에 반월면으로 통합돼 수원군으로 넘어갔다. 따라서 3개 면은 1906년까지는 광주군에, 이후 1914년까지는 안산군에, 그리고 그 이후에는 수원군에 속하게 됐고, 시기마다 군 경계와 면 경계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반월면은 수원이 시로 승격한 1949년 이후 화성군에 속해 있다가 1979년 일리·이리·사리·본오리·팔곡2리가 경기도 반월지구출장소로 편입됐고, 1986년 시로 승격됨에 따라 안산에 속했다. 1994년 다시 화성군 반월면의 건건리·사사리·팔곡일리 등이 안산시로 편입됐다.

나머지 반월지역 가운데 당수리·입북리 일대는 수원시로, 둔대리·대야미리·속달리·도마교리 일대는 군포시로 편입됐다. 그 이전 시점을 기준으로 하면 성곶면은 오늘날 안산시 상록구 일동·이동·사동·본오동, 북방면은 건건동·팔곡동과 군포시 대야동, 월곡면은 상록구 사사동과 수원시 권선구 당수동·입북동, 의왕시 초평동·월암동이 해당한다.

이러한 반월지역에서의 근대교육이 어떻게 시작됐고 발전했으며, 오늘날까지 길게 이어지는 그 교육의 연결고리를 찾아보고자 한다.

군포시 둔대로 11번길 13번지에는 한눈에 보아도 고풍스러운 한옥 고택이 있다. 이 고택은 수원에 있는 화성의 팔달문 축조 당시 사용한 같은 목재를 사용해 지었다고 한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은 이 집안이 당시 반월지역 최고의 부자였기 때문이었다.

이 집안을 크게 일으킨 사람이 바로 박영식(朴英植)인데, 그 손자가 바로 박용덕(朴容德)이다. 박영식은 손자 교육을 위해 서울 배재학당 출신 황삼봉을 가정교사로 모셔왔다.

그런데 황 선생은 가정교사로 머무르지 않고 지역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도 열심히 했다. 그러자 박 씨 집안에서는 그의 활동에 감동했는지 집 옆에 교회를 세우게 되는데 그 교회가 바로 둔대 교회다.

둔대 교회에 오랫동안 출석한 분들의 증언에 의하면 1902년 사람들이 모여 교회를 세우기로 하고 1903년 토담교회를 세웠다고 한다. 이후 교회에 나오는 지역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지역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됐는데, 대표적인 일이 바로 1919년 3·1 운동에 참여한 일이다.

또한 지역 어르신들의 증언에 의하면 이곳 둔대 교회에서 글을 배워 깨우쳤다고 한다. 즉 1931년 샘골 교회의 장명덕 전도사의 증언, 1934년 수원지방 감리사보에 실린 둔대 교회 야학 관련 기사, 1935년 감리회보의 보도에 나타나는 야학 학생 50명 기사는 이러한 사실을 증명해 준다.

당시 야학 교장이던 박인기는 반월의 지주 박용덕의 동생이며 관립경성공업학교 출신으로 교회 지붕을 함석으로 다시 짓는 등 교회와 야학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한편 6·25 전쟁으로 반월초등학교가 피폭돼 교사 건물이 없어지자 둔대 교회당을 임시교사로 사용하기도 했다.

반월지역에서 100년이 넘은 오래된 교회로는 둔대 교회와 샘골 교회가 있다. 둔대 교회는 1902년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며, 샘골 교회는 1907년 세워졌다. 그런데 두 교회는 특별한 인연이 있다.

교단이 같은 감리교단이며 둔대지역에서는 샘골 교회를 '고개 넘어 교회'라고 부를 정도로 지역적으로 가까웠다. 그리고 샘골 교회에 최용신 선생이 강습소를 세울 당시 그를 후원하던 염석주가 후원회장을 맡아 강습소 건축을 위해 당시 반월의 지주였던 박용덕을 찾아가 땅을 기부받았다.

결국, 최용신 선생이 훗날 샘골 강습소를 세우고 활동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배경이 바로 둔대 교회를 세운 박용덕 덕분이었다.

 /신대광 원일중 교사

※위 우리고장 역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경인일보 발행일 2016-09-27 제18면